토깽이~1.JPG
 
 
“삐빅 삐삑삑삑삑 삐비~빅”
오전 10시, 구원과도 같은 전자음에 귀가 쫑긋 선다. 도우미 이모님의 출근을 알리는 출입문 자물쇠 소리다. 환한 표정으로 딸과 인사하는 이모님의 손엔 검정색 비닐봉지가 들려 있다. “요즘 아침 못먹는 거 같아서…. 이거라도 먹어요” 집 근처 지하철역 노점에서 파는 뜨끈한 토스트였다. 나를 가엾게 여기는 이모님의 뜨끈한 마음에 감동해 눈꼽낀 내 눈에 눈물이 맺히는 듯했다.

아내 복직한 지 한달반, 나의 일과는 이렇다. ‘새벽형 인간’인 딸은 야속하게도 새벽 5시에 깬다. 그때부터 서로 주거니 받거니 아이를 돌보다, 오전 8시에 출근하는 아내를 따라 유모차를 끌고 밖에 나선 순간부터 아이는 온전히 내 몫이 된다. 30분여 동안 하염없이 아파트 단지를 배회하는데, 아이를 돌보는 사람들이 왜 아이들을 데리고 밖에 나와있는지 이제서야 알게됐다. 집에 돌아와선 딸의 거센 도리질을 뚫고 설득해가며 입속에 이유식을 밀어넣는다. 시계를 보면 아직도 9시. 어머니와 장모님에게 영상 통화로 딸과 놀아달라 한 뒤, 부쩍 행동반경이 넓어진 딸과 추격전에 가까운 놀이를 시작한다. 더디게 한 시간이 흐르면 이모님께 아이를 넘기고 그제서야 출근 준비를 한다.

편집기자의 업무 특성과 회사가 가까운 사정 때문에 집에 있는 시간이 꽤 길다. 직장인 아빠 치고는 육아 기여도 또는 숙련도가 꽤 높은 편이지만, 아이와 단 몇시간, 규칙적으로, 단둘이 보내는게 이리도 버거운지 몰랐다.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아내의 복직 이후 한달반 만에 4킬로그램이 빠졌다.

사실 아내는 ‘출산휴가+육아휴직’ 1년3개월을 다 채우지 못하고 1년 만에 복직했다. 아내는 가끔 옷을 차려입고 출근하는 직장 여성들을 보면서, 카톡을 통해 회사 동료들에게 들은 회사 얘기를 전하면서 “빨리 복직하고 싶다”는 말을 했다. 가급적이면 오래 쉬는 게 좋지 않겠냐는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이른바 ‘경력단절’ 없이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데, 아내에게 휴직 기간을 꽉 채우라고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냥 원할 때 복직하라고 했고, 그 결과 육아의 비중은 역전됐다. 

아내가 복직한 뒤, 같이 있을 땐 몰랐던 육아휴직중인 아내의 삶을 더 잘 알겠다. 아내에게 꾸준히 강조한 ‘아이의 규칙적인 생활’이 결코 쉬운 점은 아니라는 것도 알겠고, 아이를 돌보면서 필요한 물건을 사고, 다른 소소한 가정사를 챙기기 쉽지 않다는 것도 알겠다. 가장 절실히 깨달은 건 퇴근 시간 무렵 “집에 언제 오냐”고 묻던 아내의 카톡이 내가 보고 싶어서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아내의 복직 뒤 얻은 것은 몇가지 더 있다. 엄마만 찾던 아이가 아빠를 찾는 순간이 더 늘어났고, 아이의 일상에 대해 내가 아내에게 알려줄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오늘 아침에 얘 혼자 짚고 일어섰어”나 “얘가 자기 퇴근할 시간쯤 되면, 자기 사진보고 엄마~엄마~해” 같은. 

아내에게도 물었다. 복직하고 좋아진 점이 뭐냐고. (무드 없는) 아내의 대답은 단순했다. “글쎄…수입이 늘었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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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우 기자
포스트모던을 바라보고 있는 시대에 전근대적인 종갓집 종손으로 태어나 모던한 가족을 꿈꾼다. 2013년 9월에 태어난 딸을 키우며 유명한 기자보단 사랑받는 아빠·남편·아들이 되는 것이 삶의 목표. 회사에서 2분 거리인 자택에서 딸에게 재롱떠는 것이 삶의 낙. 2010년 <한겨레>에 입사해 사회부를 거쳐 편집부에서 일하고 있다.
이메일 :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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