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티는 계획 임신으로 낳은 아이가 아니다. 

이제 슬슬 '계획'이라도 해 볼까, 하는 마음은 있었지만 본격적으로 뭔갈 준비한 적은 없었다. 

그런데 덜컥 아이가 생긴 건, 하필 우리가 쓰던 미제 피임기구가 불량이었던 탓(이라고 믿고 있다). 연애 때부터 꼬박꼬박, 날짜 계산+피임기구를 이용해 피임을 해 왔던 우리에게 이 갑작스런 임신은 그게 아니고서는 설명 불가능했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난 뒤 우리는 급히 한국제 피임기구를 공수해와 쓰고 있다. 피임약 부작용으로 의심되는 증상을 겪으면서도 매일 피임약을 챙겨 먹는 것도 빼놓지 않는다. 다시는 계획 없는 임신을 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몸부림인 셈이다. 


이런 우리의 의지를 알기라도 하는 듯, 최근 케이티는 우리에게 온몸으로 '나는 동생이 싫어요!'라고 알려왔다. 오늘은 그리하여, 우리가 둘째를 가질 수 없는 이유에 관해 이야기하려 한다. 


갓 한달 된 신생아를 둔 한국인 지인 댁에 무시로 들락거리며 집안일을 도와 주던 어느 날.

아기 엄마가 유축을 해야 하는 타이밍이라 내가 아기를 돌보게 됐다. 막 잠에서 깬 아기가 칭얼거리는 폼이 배가 고파 그런 듯 하여 내 품에 안고 젖병 수유를 하기 시작했다. 무슨 일인지 궁금해진 케이티, 엄마 옆으로 다가와선 안아 달라고 보채며 불만스런 표정으로 아기를 본다. 


'넌 누군데 우리 엄마한테 안겨 있는 거냐?'


뭔가 심상찮은 기운이 퍼지고 있음을 눈치 챈 엄마, 얼른 아기를 안은 몸으로 케이티 옆에 무릎 까지 꿇고 앉아 말을 걸었다. "케이티, 아가 좀 봐. 아기 밥 먹네? 아가야가 배고프대, 근데 이모는 바쁘니까 엄마가 잠깐 도와주는 거야." 그러나 케이티의 표정은 여전히 떨떠름했다. 안되겠다 싶어 신생아에게 물려주던 젖병 끝에 케이티의 손을 살포시 가져다 놓았다. "케이티, 아가야 밥 줘볼래? 냠냠, 아가야, 맛있게 먹어, 하고 줘 봐." 


하지만 그렇게 젖병에 손을 대는 것도 잠시, 케이티는 곧 흥미를 잃고 시큰둥, 심드렁한 표정으로 엄마 앞에 놓인 의자에 몸을 기대어 엄마와 아기를 바라보기만 했다. 특별히 크게 소란을 피우는 것도 아니어서 그냥 잠깐 저렇게 넘어가나보다, 생각했다. 30분 동안 아기에게 수유를 하고, 기저귀를 갈아 주고, 유축을 마친 아기 엄마에게 아기를 안겨 주고 우리는 점심을 먹으러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막상 일은 그 후에 발생했다. 케이티가 갑자기 아빠만 찾고 엄마는 가까이 가기만 해도 싫어하는 게 아닌가! 점심 먹으러 온 아빠는 마구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으려 하는 케이티를 보고 갸우뚱, 이유를 알 것 같은 엄마는 '설마 정말 그래서 그런거야?' 싶어 또 갸우뚱. 전쟁 같은 점심 시간을 치르고 남편이 낮잠까지 재워 놓고 나온 뒤에야 둘이 앉아 얘기를 나눴다. 결론은 같았다. 케이티, 질.투.하.는.구.나..!!


그 날부터 오늘 오전까지, 나는 만 4일을 꼬박 케이티에게 꽉 잡혀 살았다. 그렇게 나가 놀기 좋아하는 아이가 4일 내내 엄마랑은 산책도 한 번 안 나가고 아빠가 들어오면 기다렸다는 듯이 신발장에 가 신발을 들고는 아빠에게 매달렸다. 엄마와 산책을 나가면 필시 그 '아가'가 있는 집에 가게 되리란 걸 알아서일까. 엄마랑은 절/대/로 밖에 나가지 않으려 했다. 그리고 집 안에서는 엄마를 꼼짝 못하게 앉혀 놓고 퍼즐도 엄마 무릎에 앉아서 하고 책도 엄마 무릎에 앉아서 보고 노래도 엄마 무릎에 앉아서 들었다. 그 덕에 나는 마치 그 옛날 분리불안 절정기 때 처럼, 부엌에도 화장실에도 가지 못하고 애 앞에서 절절 매야 했다. 남편이 이런 저런 말로 나와 케이티를 화해시키려고 애썼지만 쉽지 않았다. 엄마가 낮잠을 재우려는 것도, 밥을 먹으라고 식탁에 앉히는 것도 다 마음에 안 든다고만 했다. 소리를 지르고, 울고, 떼 쓰며 아빠한테만 들러붙었다. 그러다 어제 저녁 무렵에야 조금씩 마음이 누그러지는 듯 했다. 혹시나 해서 "엄마 무릎에 앉아서 밥 먹을래?" 하고 안아 올려 앉혔더니, 어라, 군말 없이 앉는다! 그러고는 그 옛날 이유식 처음 시작할 때 처럼 밥을 떠 먹여주니 함박 웃음 지으며 낼름 받아 먹는다! 아마 제 딴에도 '아기 때처럼' 엄마가 먹여 주는 게 그리웠던 모양이다.  


그리하여 우리 부부는 큰 교훈을 얻었다. 아, 역시 둘째는 안되겠어, 라는. 

태어나서 단 한번도 엄마를 다른 존재에게 빼앗긴 적이 없었던 아이에게, 그 30분은 얼마나 느닷없고 야속한 시간이었을까. 게다가 우리는 원래 병원에 갈 일이 있거나 뭔가 갑작스러운/일시적인 환경 변화가 일어날 때는 꼭 미리 시간을 들여 케이티에게 일일이 설명을 해 준다. 만일 실제로 동생이 생기는 상황이었다면 오랜 시간을 들여 '아기'의 존재를 설명했겠지만 이웃집 아이를 잠깐 봐주는 것 정도야 괜찮겠지, 하고 쉽게 생각했던 게 잘못이었다. 웃음 많고 사랑 많은 아이라 그리 힘든 적 없이 지금껏 키워 왔는데, 만 4일 동안 벌을 받고 보니 역시 '형제/자매간의 경쟁 의식'이란 게 괜히 생기는 게 아님을, 또 이런 갈등에 대해 부모의 대처가 중요한 만큼 어렵기도 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사실 나는 케이티를 낳고 나서 줄곧 '둘째는 낳지 않겠다'고 생각해 왔는데, 그 이유도 이것과 관련이 있었다. 물론 그 전에 더 큰, 근본적인 이유도 있다. 케이티는 치료법도 없는 선천성 혈관기형을 갖고 태어난 아이. 내가 둘째를 낳는다면, 과연 아프지 않은 아이를 낳을 수 있을까? 첫 아이니까 '아플 가능성이 있다'는 말을 듣고도 내 몸과 마음을 믿고 낳았지만, 둘째를 갖고 또 그런 얘길 듣게 된다면 정말 심각하게 고민하게 될 것 같다. 그렇다고 내게 온 아이를 '가능성'만 가지고 떠나보내기로 결정할 수도 없는 노릇인데, 그러다 정말 아이가 아픈 채로 태어난다면? 그 때도 나는 케이티 때와 같이 받아들이고 즐겁게 열심히 아픈 두 아이를 키워낼 수 있을까? 솔직히 자신이 없고, 생각만 해도 겁이 덜컥 난다. 아마 이 문제는 첫 아이로 아픈 아이를 둔 부모라면 누구나 생각하게 되는 문제일 것이다. 그런 무섭고 아픈 고민 끝에 다시 아이를 낳고 기르는 수많은 부모들을 진심으로 존경한다. 


그런데 백번 긍정적으로 생각해서 둘째가 아픈 데 없이 건강하게 태어난다 하자. 하지만 그런 경우엔 어쩌면 그 아이의 존재 자체가 케이티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다. 케이티는 자라면서 점점 더 악화될 병을 안고 있는 만큼 그런 걱정 없이 살아가는 동생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할테니 말이다. 어쩌면 엄마의 마음과는 전혀 상관없이 '쟤는 아프지 않고 다리도 예쁘니까 엄마가 더 예뻐하는 것 같아'하고 느낄지도 모른다. 별 것 아닌 일에도 '건강한 동생'과 '아픈 나'의 입장을 놓고 비교하며 자신은 엄마에게 짐만 되는 것 같다고 느끼거나, 신체적 제약없이 행동하고 선택할 수 있는 일이 훨씬 많은 동생의 입장을 가슴 아프게 부러워할 수도 있을 것이다. 동생 입장에서는 또 거꾸로, '엄마는 형/오빠가 아프니까 맨날 형/오빠만 챙기고, 나는 안중에도 없다'고 느낄수도 있겠지. 


이러저러한 이유로, 아마 우리는 당분간 둘째 얘기는 입에도 올리지 않게 될 것 같다. 예전부터 남편과 이야기 해 온, 입양 문제가 아직 남아 있긴 하지만 그건 먼 훗날의 얘기가 될 테니 잠시 미뤄놓자. 지금 우리가 할 일은 나흘 꼬박 질투심에 엄마를 들었다 놨다 한 요 악동, 케이티를 온전히 사랑하고 보듬는 일,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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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이슬
'활동가-작가'가 되는 것이 꿈이다. 막연했던 그 꿈에 한발 더 가까워진 것은 운명처럼 태어난 나의 아이 덕분이다. 아이와 함께 태어난 희소질환 클리펠-트리나니 증후군(Klippel-Trenaunay Syndrome)의 약자 KT(케이티)를 필명으로 삼아 <이상한 나라의 케이티> 라는 제목의 연재글을 썼다. 새로운 연재 <아이와 함께 차린 글 밥상>은 아이책, 어른책을 번갈아 읽으며 아이와 우리 가족을 둘러싼 세계를 들여다보는 작업이다. 내 아이 뿐 아니라 모든 아이들을 함께 잘 키워내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데 도움이 되는 글과 삶을 꾸려내고 싶다.
이메일 : alyseul@gmail.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alyson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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