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숫자로 본 영유아 필수예방접종
수백억 증액안 내년분에 반영안해
저출산대책, 한달도 안돼 ‘없던일로’
정부가 저출산 대책의 하나로 비(B)형 간염 등 영유아의 필수예방접종 비용에 대한 지원을 기존 30%에서 90%로 늘리겠다고 약속하고도 정작 내년도 예산안에는 이를 전혀 반영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7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곽정숙 민주노동당 의원이 질병관리본부에서 제출받은 내년도 예산안 자료를 보면, 민간 병·의원 필수예방접종비 지원 예산(국민건강증진기금)은 144억3700만원으로 책정됐다. 질병관리본부는 현재 30%인 필수예방접종 비용 국가 부담분을 90%로 확대하기 위해 675억3100만원의 예산을 짰으나, 정부 예산안이 최종 확정되는 과정에서 대폭 깎였다.
앞서 보건복지부는 지난 2월 국회 업무보고에서 “임신·출산 비용 부담을 완화시키기 위해 올해 12월부터 민간 병·의원에서 필수예방접종을 할 때 본인 부담 비용을 1회 평균 1만5000원에서 2000원으로 낮출 것”이라고 밝혔다. 또 한나라당과 정부는 지난달 7일 열린 예산 당정협의에서 ‘친서민 복지예산’을 확대한다며 영유아 필수예방접종에 대한 본인 부담금을 절반 이하로 낮추기로 결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접종비 지원 확대에 필요한 추가 예산은 학보하지 않아 ‘빈말’이 되고 만 것이다.
현재 필수예방접종은 비형 간염 등 11가지 전염병을 예방하기 위해 8종의 백신을 0살부터 만 12살 때까지 모두 22차례 맞도록 돼 있다. 연령별로 보면 0~1살 15회, 2~6살 5회 등 영유아 시기에 몰려 있다. 보건소에서는 무료지만, 민간 병·의원의 경우엔 정부 지원(접종비의 30%)을 받아도 22회를 접종하는 데 33만원이 든다. 여기에 정부 지원이 전혀 없는 로타바이러스(30만원) 등 선택예방접종 비용까지 포함하면 부담은 훨씬 커진다.
둘째 아이를 임신한 ‘워킹맘’ 박희정(34·경기 일산)씨는 “건강과 직결된 일이라 병원에서 필수예방접종은 물론 선택예방접종까지 모두 맞혔더니 첫째 아이의 경우 100만원이 넘게 들어갔다”며 “필수접종은 보건소에서 하고 싶지만 거리가 멀고 직장 때문에 시간 맞추기도 어려워 병원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재정 여건이 좋은 서울 강남구 등은 민간 병·의원 필수접종 비용을 100% 지원해 주고 있어, 지역간 형평성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곽정숙 의원은 “지원이 미흡하다 보니 우리나라의 필수예방접종률은 7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권장하는 95%보다 20%포인트나 낮다”며 “복지예산을 대폭 늘렸다고 홍보하더니, 이미 약속한 사업마저 무산시키는 것은 국민을 우롱하는 처사”라고 비판했다.
김소연 기자 dand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