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10150101_20140731.JPG » 제주의 자연과 축제는 특별한 계획 없이도 하루를 꽉 채운다. 펜션 레이지마마에서 아이와 제주에 한달살이하는 가족들(가운데 사진)과 게스트하우스 계란후라이에서 만난 한달살이 여행자들. 왼쪽부터 김세중, 이유리, 김석훈씨.(오른쪽 아래)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 제주에서 한달 살기
3박4일 여행으로는 아쉬움이 더 크다. 그렇다고 삶터를 완전히 옮길 엄두는 나지 않는다. 
양쪽의 아쉬움을 털기 위해 딱 한달, 제주살이를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빈둥거림의 행복을 누리는 최고의 시간과 장소다.

“이게 공벌레예요.” 제주시 조천읍 대흘리에 있는 펜션 레이지마마 앞마당에 들어서자마자 5살 유환이는 방문객의 손바닥에 공벌레를 한 움큼 털어주었다. 한달살이 전문 숙소인 이곳 분위기는 투숙객 대부분이 아침 일찍 나가면 비어버리는 다른 곳과는 좀 달랐다. 10명 남짓한 아이들은 눈뜨자마자 마당에 모여 오전 내내 마당에서 벌레 잡고 뛰고 구르며 자기들끼리 놀았다. 유환이는 엄마와 제주도에서 한달 살기 위해 서울에서 왔다. 유환이와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은 다음날도 또 그다음날도, “별다른 일정 없이 빈둥거리며” 하루를 보낸다. 긴장하는 생활의 버릇을 털기엔 일주일 휴가는 모자란다. 그렇다고 아예 옮겨 사는 것은 무리다. 1년에 딱 한달을 제주에서 보내는 ‘제주 한달살이족’들이 늘어나고 있다.

아이 있는 가족들 
방학 때 몰리고 
30~40대 독신들 
휴직이나 퇴직 후 찾아와 
한달살이용 임대시장 성장 
게스트하우스 호핑족도 많아

6살, 5살 아들을 둔 이주영(35)씨는 2년 전 나온 책 <제주도에서 아이들과 한 달 살기>(전은주 지음, 북하우스)를 보고 별러왔던 계획을 올여름 드디어 현실로 옮겼다. “아이가 생기고 한번도 낮잠을 자본 일이 없어요. 첫째와 둘째를 차례로 어린이집에서 데려오면 도서관, 미술학원 보내고 운동시키고 늘 프로그램을 짜서 살았죠. 1년에 한달만이라도 스케줄 없이 살고 싶었어요.” 마침 이씨의 친구 김정희(37)씨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던 참이었다. 6살 딸과 4살 아들을 데리고 한달 동안 레이지마마에 살러 온 김정희씨는 “맛집과 관광지만 찍고 들르는 여행과는 달리 한달살이는 아이도 어른도 자유로움을 느끼는 여행 방식”이라고 말한다. 2012년 9월 제주로 이주한 레이지마마의 주인 이연희씨는 올 7월 한달살이 경험을 모아 책 <엄마랑 아이랑 제주에서 한달>(미디어 윌)을 냈다.

지난해부터 제주에는 한달살이 전문 숙소가 급히 늘어나고 있다. 2013년 2월 장사가 되지 않아 비어 있던 펜션을 빌려서 한달살이용 숙소로 개조한 레이지마마가 문을 열었다. 6가구가 살 수 있는 이곳은 적어도 석달 정도 전엔 미리 예약을 해야 한다고 했다. 2013년 여름 제주시에 지어진 씨앤하우스는 24가구 8층짜리 소형 아파트 건물이다. 김현철씨는 1년치 월세를 미리 내는 제주도 풍속을 좇아 값싸더라도 편히 임대해볼 생각으로 이 건물을 지었다. 그런데 임차인들이 죄다 한달살이만을 원했다. 한달씩 임대해온 것이 벌써 1년, 올해 9월까지 한달살이 예약이 모두 찼다. 그는 올겨울 아예 한달살이용 전문 숙소를 새로 지을 계획이다. 한달살이는 제주 임대 시장의 풍속도를 바꾸어놓았다. 네이버 카페 ‘제주도 좋은 방 구하기’(http://cafe.naver.com/landjeju1) 공동 운영자인 소망공인중개사 김미경 소장은 “6월이 되면 제주도에 한달 살 집이 있는지 묻는 전화가 하루 10통 넘게 온다. 공인중개사들은 이를 ‘효리 효과’라고 부르는데, 가수 이효리씨나 장필순씨 등의 제주살이를 보며 갖게 된 ‘우리도 한번쯤 제주에서 살 수 없을까’라는 로망이 ‘한달살이’라는 방식으로 표현되는 듯하다”고 했다. 아이를 데리고 제주에서 한달을 살려면 임대료를 포함해 최소 150만~200만원 정도 든다고 한다. 올해 아이를 데리고 한달 살러 내려온 이주영·김정희씨는 벌써 내년 한달살이를 위한 적금을 다시 붓기 시작했다고 한다. 한달살이는 일생에 한번이 아니라 매년, 가끔의 방식으로 정착되고 있다.


 00509687301_20140731.JPG » 제주에 한달살이하는 가족들의 모습.

가족뿐 아니라 홀로 제주에서 한달을 보내는 이들도 적지 않다. 김 소장은 “1, 2월이나 7, 8월엔 아이들 방학을 맞아 한달살이 하러 오는 가족들이 많지만 다른 달에는 혼자 오는 사람들이 많다. 혼자 오는 사람들 중엔 40대 여자가 가장 많고, 직장을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 전 오는 30~40대 남자들이 그다음을 차지한다”고 말했다. 제주시에 있는 오피스텔 건물 메르헨하우스도 한달살기 하는 사람들이 애용하는 숙소다. 근처 부동산에선 “900가구 정도 되는데 혼자 제주에 내려온 회사원이 가장 많고 그다음은 가족 단위로 와서 묵는다”고 했다.

소설을 쓰며 등단을 준비하는 이진영(33)씨는 올해 3월 혼자 메르헨하우스에서 한달살이를 했다. 이씨는 “말수를 줄여야 글이 나올 것 같아서 제주로 갔다. 한달 반 남짓한 기간 동안 절반은 여행하고 절반은 작업을 했는데 그냥 목적 없이 가기엔 두달은 너무 길고 한달이 딱 적당할 것 같더라”고 되돌아본다. 한달 여행자를 여럿 만났다는 이진영씨는 “게스트하우스에 가면 회사를 그만두고 쉬러 온 사람들이 가장 많았다. 육지에서 만났더라면 무슨 일 하는 사람인지 이런저런 잣대를 들이댔을 텐데 제주에선 제주가 좋아서 왔다고 하면 그걸로 충분했다”고 한다. 매일 돈을 받는 게스트하우스는 원래 ‘일수 숙소’라고 불렸지만 한 게스트하우스에서 다른 게스트하우스로 옮겨다니며 한달씩 머무는 20대 중반의 호핑족들이 많아지면서 이 가운데에는 아예 하루 4시간씩 게스트하우스에서 일하면서 숙식을 제공받고 여행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제주시 구좌읍에 있는 게스트하우스 계란후라이에서 만난 20대 젊은이들도 비슷했다. 이곳에서 스태프로 일하는 김석훈(19)씨는 군입대를 앞두고 제주로 왔다. 대안학교 교사가 되고 싶은 그는 “집에 있었으면 낮에는 아르바이트 하고, 밤에는 게임하며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제주에 온 덕분에 나중에 아이들에게 들려줄 수 있는 값진 경험을 했다”고 말했다. 요양센터에서 7년을 일해온 이유리씨는 7월7일 회사를 그만두고 제주로 왔다. “외국여행보다는 안전하고, 육지보다는 여유롭다. 그러면서 새로운 인연을 맺는 두근거림이 있다”는 것이 이씨가 말하는 짧은 제주살이의 매력이다. 성산읍 게스트하우스에 머물고 있는 김세중(22)씨는 고향인 경남 사천시 삼천포에서 포장공장에 다녔다. 어느 날 문득 “이 나이에 아침 8시부터 저녁 6시까지 매일 똑같은 노동을 반복하며 살아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로 가는 대신 제주행 배를 탔다. “지금 제주는 서울보다도 더 다양한 사람이 모이는 곳”이라고 했다. 장기 여행자들이 많이 찾는 게스트하우스로는 계란후라이 외에도 써니허니, 아프리카, 레프트핸더, 쫄깃쎈타 등이 꼽힌다.

제주에서 무엇을 하며 한달을 보낼까? 한달살이 해본 사람들은 한결같이 “아무것도 계획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이유리씨는 “처음 왔을 땐 너무 불안해서 노트북 컴퓨터를 손에서 놓지 못했다. 여행 계획도 짜고 영어공부도 했다. 일주일이 지나면서 비로소 이 여유로운 자연과 사람들 사이에서 내가 뭐하고 있나 싶어졌다. 여기는 내려놓는 곳”이라고 했다. 레이지마마의 이연희씨는 “인생의 전환점은 빈둥거리며 시간을 보낼 때 찾아왔다”며 “빈둥거림의 미학을 실천하기엔 제주만한 곳이 없지 않으냐”고 되묻는다. 제주에서 한달살기는 빈둥거리기를 제대로 실천하는 시간이다.

제주/글·사진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이연희 제공

(*한겨레 신문 2014년 7월 3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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