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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이였을 때 정말 듣기 싫었던 말 중 하나가 야단 맞고 울 때 “뚝 그쳐!” 하는 소리였다.

무서워서, 속상해서, 후회되서, 화 나서 우는 건데 어른들은 아이가 혼날 때 우는 것을

건방지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더 울고 싶은데 혼날까봐 억지로 울음을 참는 것이 정말 싫었다.

그냥 실컷 울면 더 시원하겠는데 어른들은 그걸 못하게 했다.

그래서

나는 어른이 되고 엄마가 되었을 때 내 아이들에게 울지 말라고 윽박지르거나 울음을 그치라고

야단치지는 말아야지... 결심했었다. 특히 아들에게 더 그랬다.


같은 아이라도 여자 아이가 울면 덜한데 남자 아이가 울면 어른들은 더 야단을 치신다.

사소한 일로 울음을 터뜨리면 “남자가 이런 걸로 운다”고 혼내고, 싸우다 울면 “우는 사람이

지는 거다”며 야단치고, 잘못해서 혼날 때 울면 “뭘 잘 했다고 울어, 어서 그쳐” 소리친다.

이런 게 정말 싫었다. 남자 아이건 여자 아이건 울고 싶으면 울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남자애라고 덜 속상하고, 덜 억울한 건 아닐텐데, 왜 감정 표현을 하는 것에 남자와 여자의

차이가 있어야 하는가 말이다. 아프거나 슬프거나 속상해도 꾹 참고 울지 않는게 남자답다고

어르신들은 생각하시지만 그렇게 키운 탓에 한국 남성들은 감정 표현을 잘 못하고, 특히 슬픔과

애도를 표현하고 감당하는데 지독하게 서툴고 미숙해서 고생을 많이 한다.

울면 약한 사람이다, 울면 지는 거다, 울면 무너진다는 생각으로 자기를 필요 이상으로 감추고

권위 속으로 숨어 버리게 되면 살아가는 내내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감정들 때문에 몸과 마음이

다 아프기 쉽다.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을 허용하는 사회일수록 남자들의 일탈이 적다는

얘기를 듣는다. 그리고 보면 우리나라의 밤 문화가 유난히 질퍽거리는 것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감정들을 끙끙대며 안고 사는 한국의 남자들이 왜곡된 방법을 통해 마음의 응어리들을 분출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건강하게 살아가기 위해서 눈물은 참 필요하고 또 중요하다.

답답하고 맺혔던 감정들이 펑펑 쏟아버린 눈물로 풀리는 경험, 여자들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뭐든지 잘 풀어내지 못하고 쌓아 두면 병도 되고 문제가 되기 마련이다.

울고 싶을 때 울고, 웃고 싶을 때 웃으면 대부분의 것들은 큰 문제가 되지 않고 지나가 버린다.


큰 아이이자 첫 아들인 필규는 유난히 눈물이 많다.

싸우거나 억울해서, 야단 맞아서 울 때도 있지만 특히 동화책을 읽으면서 많이 울었다.

유명한 그림책 <스노우맨>을 읽다가 마지막 장면에서 눈사람이 모두 녹아 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때 필규는 소리없이 펑펑 울었다.

<파트라슈의 개>를 읽을 때는 네로와 파트라슈가 껴안고 얼어 죽는 대목에서부터 통곡을 했다.

<고녀석 맛있겠다>라는 책은 필규와 내가 함께 읽다가 둘이 대성통곡을 한 책이다.

몇 번을 읽어도 역시 마지막 장면에선 둘 다 눈물이 글썽해진다.

영화 <토이 스토리>를 보다가 장난감들이 정들었던 주인을 떠나 새 주인에게 갈 때도 펑펑 울었고

책에서나 영화에서나 주인공이 죽거나 고통을 받는 장면에선 예외 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럴 땐 대개 나도 같이 울었다. 엄마와 아들은 책을 읽다가 서로 껴안고 펑펑 우는 일이 흔하다.

필규는 애정을 기울이는 대상에게 감정이입을 잘 하기 때문에 그 대상이 겪는 슬픔이나 고통에

저도 같이 울고 웃곤 한다. 감동을 받을 때도 눈물을 곧잘 흘린다.

필규를 키울 때 우는 것으로 야단을 치지는 않았다. 오래 울거나 자주 울 때도 울지 말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떼를 쓰며 울 때는 “맘대로 울어도 좋지만, 아무리 울어도 안돼!”라고

얘기했지 “어서 그치라!”는 소리는 하지 않았다. 사실 아이가 울 때 그냥 두면 결코 오래 가지 않는다.

울음을 참는 게 어렵지, 한 없이 오래 우는 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는 걸로 엄마의

관심을 더이상 끌지 못한다는 걸 알게 되면 아이의 울음은 쉽게 사라지기도 한다.

필규는 어렸을 때도 아홉살인 지금도 눈물이 많고 자주 운다.

그 덕에 감성이 아주 풍부한 아이로 자랐다.


마당 있는 숲 속의 집으로 이사온 후로 필규가 울고 웃는 일이 더 많아졌다.

얼마 전엔 이웃이 등산길에서 주웠다며 가져온 아기새를 정성껏 돌보다가 하루 만에 죽어버린

일이 있었다. 아기 새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부터 윗 밭 자두나무 아래에 묻어주기까지

필규는 내내 울었다.

나는 필규가 충분히 울게 두었다. 필규가 원하는 대로 아기 새를 떠나 보내는 의식을 치뤄 주었고

아기 새의 무덤에서 필규가 오래오래 우는 동안 곁을 지켜 주었다.

아이가 슬픔을 느낄 때 그 슬픔을 충분히 표현하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여긴다.

아쉬움 없이 표현하고 드러낸 슬픔은 마음에 그늘을 만들지 않는다.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애도하고 이별을 할 수 있으면 더 빨리 그 상실에서 벗어날 수 있다.

어른에겐 아무것도 아닐지라도 아이에게 의미가 있고 소중한 일이라면 아이가 충분히 그 감정을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아기 새가 죽었을 때 나는 필규에게 인터넷을 뒤져 그룹 ‘넥스트’가 불렀던 <날아라 병아리>라는

노래의 뮤직비디오를 보여주었다.

‘내가 아주 작을 때 나보다도 작던 내 친구...’라는 첫 가사에서부터 필규는 대성통곡을 했다.

그리고 울면서 그 노래를 따라 부르고 외웠다.

기르던 개 ‘해태’가 죽었을때는 ‘굿바이 얄리’ 대신 ‘굿바이 해태’라고 바꿔 부르면서 울었다.

이따금 필규와 그 노래를 같이 흥얼거리면서 죽은 아기새와 해태를 떠올리고 얘기하기도 한다.


울음을 잘 참는 아이가 강하고 씩씩한 게 아니다.

울고 싶을 때 마음껏 울 수 있는 아이가 건강한 아이다.

남자니까, 사내아이니까 울고 싶어도 참고, 견디고, 이겨내라는 주문은 아이의 영혼에

그늘을 만들고 제 감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만들 뿐이다.

울고 싶어 하는 아이는 울게 하면 된다. 울고 싶은 이상으로 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필요한 만큼 눈물을 흘리고 나면 더 의연하게 설 수 있다.


남자아이의 울음은 부끄럽지도 창피한 것도 아니다.

남자건 여자건 울고, 웃으며 자랄 뿐이다.


아들을 강하게 키우고 싶다면 울지 못하게 할 게 아니라, 스스로의 감정을 잘 이해하고

자신을 더 잘 돌보는 사람으로 기르 는게 옳다. 그게 정말 강한 사람이다.

기르던 햄스터가 죽었다고, 게임을 오래 못해서 속상하다고, 동생이 밉다고, 내가 원하는 걸

사달라고 수많은 아들들은 오늘도 울음을 터뜨릴 것이다.


울게 놔두자. 아이가 원하는대로 다 들어줄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되지만 적어도

울고 싶은 아들을 울게 하자. 질질 짠다고 흉보지 말고, 여자처럼 운다고 야단치지 말고

남자아이가 이런 걸로 우냐고 비난하지도 말고, 그냥 아들에게 눈물을 허락하자.

그렇게 키워도 괜찮다.

그렇게 키우는 게 더 건강하다.


제발 우리 아들들에게 딸처럼 똑같은 눈물을 허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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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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