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d2f9d88e5f7d30e0f53afeccbaf550.특별히 쇼!가 필요한 날이 아니면, 나는 아이에게 남색바지를 즐겨 입힌다. 아니…즐겨 입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공식 유니폼 수준이다.



일단, 남색바지는 코디할때 두루 이점을 가지는데, 어떤 윗도리와도 무난하게 잘 어울린다. 옷을 얻어 입히다 보면 짝이 맞지 않는 옷도 많은데, 남색바지는 ‘만인의 연인’과도 같아서 어떤 옷과도 믹스매치해도 잘 어울리고, 전체적인 스타일을 깨끗하고 안정감 있게 받혀주는 역할을 한다. 우리 어른들이 검은색 정장바지나 진바지를 기본 바지로 가지고 있는 것과 동일한 원리다.



그 뿐만 아니라, 남색바지에는 더 실존적 이유가 담겨 있다. 나는 패션, 즉 뭘 입는가와 스트레스, 상상력과 자유와 강한 상관관계가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직장을 선택할 때도 옷을 자유롭게 입을 수 있는지를 아주 중요하게 본다(정장이나 제복입는 회사는 내 선에서 아웃!^^). 아기의 남색바지 역시 나와 아기의 스트레스와 자유분방함에 상당한 기여한 점에서 간택된 우리 아기 ‘머스트 해브’ 아이템이다.



6db02de9273b3f0905f8443e01d50eca.막 걷기 시작한 토들러들은 직립보행, 질주본능의 재미에 푹 빠져, 도무지 조절, 통제가 불가능할 때가 많다. 인형놀이 하듯, 예쁜 드레스를 입혀 놓으면 공주처럼 우아하게 앉아서 놀아주면 고맙겠지만, 아이들은 그런 우아한(!) 존재가 아니다.(그렇게 놀아서도 안 되고!) 나 역시 핑크, 노랑 파스텔톤의 새 옷을 입히고 나갔다가, 아이가 자기 멋대로 아무데나 주저앉아서 혈압이 솟구치고 뒷골이 땡기던 경험이 있다. ‘지못미(지켜주지 못해 미안해!)'의 대상은 예쁜 옷 -.-;;;’ 아기가 주저앉는 순간, 더러워진 옷을 손으로 비벼 빨아서 삶아야 하는 시뮬레이션까지 해가며 ‘으이그… 못 살아’,'내 이럴 줄 알았어...'라는 자학적 멘션이 아이에게 마구 분사된다. 새 운동화 신고 나갔다가 흙 묻었을 때, 뻥 좀 보태면 새 차 몰고 나갔다가 어디다 긁었을 때와 비슷한 스트레스 강도다. 비싼 옷, 새옷, 샤방샤방한 공주풍 옷일수록 리스크와 스트레스는 심해진다.



6530b34bc11dd7be0ea6e0f8093a764c.그런데 참 신기하게 남색바지를 입혀두면 어디에서 주저앉든, 음식을 흘렸든 크게 신경쓰지 않게 된다. 헌 옷이면 더더욱 관대해진다. 그래서 나는 외출할 때는 꼭 남색바지를 입힌다. 남편은 공주옷도 입히고 싶어하지만, 내 신념은 완고하다. 텃밭에 갈 때도 마찬가지다. 아예 작정하고 흙에 앉아서 놀아도 나는 다리꼬고 앉아 천하태평할 수 있다. 옛날 광부와 카우보이들 바지가 블루진이었던 것과 비슷한 원리다. 나만 편한가? 나의 통제가 적어지는 만큼 아이도 자유롭고 신난다. 남색바지만 입으면 아무데나 주저 앉고, 땅도 기고, 흙에서 헤엄도 치고, 벽도 타고, 무서울 게 없다. 남색바지에 주어지는 자유와 파워는 스파이더맨 저리 가라다. 이럴 때 나는 '옷이 날개!'라고 한다.  



딸 아이를 키우면 샤방샤방한 리본에 레이스 달린 예쁜 공주옷 사서 입히는 재미가 꽤 쏠쏠하다고들 하는데, 우리 딸은 ‘딸의 품위보다 엄마의 안위를 먼저 챙기는 엄마’를 만난 탓에 일찍이 공주되기는 글렀다. 내가 사주지는 않았지만, 선물 받은 공주풍옷들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그 옷들은 결혼식 등 간만에 만나는 가족, 친지들을 위한 쇼!가 필요할 때 입는 행사용 옷이거나 교회갈 때 썬데이베스트 정도로 활용된다. 곱게 잘 입었으니 물려받을 누군가(!)는 대박이다!^^



b1b8e33f7630f3edb7a68a224912d474.허구헌날 남색바지에 거지패션을 선보이는 우리 딸이 베스트드레서는 못되더라도, 패션 테러리스트만은 면하게 해줄 비책(^^)도 갖고 있다. 아무리 자유로움이 좋아도 윗도리까지 짙은 계열을 입히면 분위기 아주 꿀꿀해지니, 윗쪽 사정은 스카프나 조끼로 갈음하는 정도로 한다. 대신 메인의 단조움과 심심함을 탈피하기 위해서 머리핀이나 스카프, 모자 등을 활용해서 포인트만 살린다. (요즘 유행하는 무심한 시크룩의 핵심ㅋㅋ^^)



특히 머리핀은 우리 아기 최대 매력. 코보다 더 돌출된 앞짱구를 도드라지게 하고, 최소한의 성별 구분 지표로 활용된다.(핀을 꼽아도 아들이라고 묻는 분들도 계시다만...;;;) 스카프는 무채색 계열의 옷에 활력을 줌과 동시에 윗도리의 더러움을 감추거나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 어쩌면 올해가 아이의 패션을 통제하는 마지막 해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본인 취향이 생기고, 성적 정체성이 분명해져서 패션의 전권을 본인이 가질 때까지 나의 남색바지 사랑은 영원할 것 같다. 그 이후 아이가 스스로 남색바지를 벗게 되더라도 남색바지의 자유정신만은 챙길 수 있도록 최대한 협조하고 싶다.



어제는 어린이날, 선물은 없었다. 놀이공원, 동물원도 없었다. 대신 남색바지를 입혀서 ‘길 위의 자유로움’을 양껏 선사하는 것으로 어린이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차리고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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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희
30대 중반, 뒤늦게 남편을 만났다. 덜컥 생긴 아기 덕분에 근사한 연애와 결혼식은 건너뛰고, 아이 아빠와 전격 육아공동체를 결성해 살고 있다. '부자 아빠=좋은 아빠', '육아=돈'이 되어버린 세상에 쥐뿔도 없으면서 아이를 만났고, 어쩔 수 없이 '돈 없이 아기 키우는 신세'가 되었다. 처음엔 돈이 없어 선택한 가난한 육아였지만, 신기하게도 그 경험을 통해 가족, 친구, 이웃과의 관계를 풍요롭게 만들어가고 있다. 더불어 몸의 본능적인 감각에 어렴풋이 눈을 뜨 고 있으며, 지구에 민폐를 덜 끼치는 생활, 마을공동체에 재미를 들여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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