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059038_P_0.JPG » 한겨레 사진 자료 ::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


['엄마가 미안해' 편지 공모전 미안해상 수상작]
너와의 거리

이안아, 이안아. 출생신고를 하고도 왠지 입에 익지 않아 한 번 생각을 하고 불러야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제는 엄마가 모든 걸 잊어도 잊지 못할 이름, 이안아.
 
누구든 잘한 일보다야 후회되는 일이 크게 남기 마련이라 해도, 엄마라는 이들에겐 유독 더 그런 것 같다. 모성의 위대함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지만 그 성스러운 감정의 주체도 가끔 엄마노릇이 지긋지긋해지고, 그래서 종종 꾀를 부린다는 이야긴 아무도 믿고 싶어하지 않거든. 새로 엄마가 된 사람들만 스스로의 부족함을 마주하고 자책을 거듭하며 매일을 넘기는 거지. 짜증내서 미안해, 모진 말 해서 미안해, 약속 못 지켜서 미안해, 못 지킬 약속해서 미안해. 하지만 이안아, 엄만 네 엄마이기보다 내 자신이었던 순간들에 대한 사과는 하지 않으련다. 적어도 지금은 아니야. 훗날 네가 또 엄마가 되어 너만의 반성이 고개를 들면, 아니야 걱정마, 엄마도 그랬는데 지금 넌 이리 훌륭하게 컸잖니, 하고 슬쩍 에두르며 어른이 된 너의 등을 찬찬히 쓸어 내리고 싶다.
 
잘못을 해놓고도 뭐 그리 당당하냐고 웃을지 모르겠네. 그런데 이안아, 지금 네게 털어놓고 용서를 구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은 따로 있단다. 사실은 부끄러워 나만 아는 비밀로 하고 싶지만, 앞으로 계속 네 엄마로 살아가기 위해선 이번에 꺼내어 다짐을 해두어야겠더라.
 
넌 사람에게 붙어 체온을 나누는 걸 유독 좋아하는 아가였어. 앉아있으면 가만히 엄마 팔에 기대어 오고, 안아주면 엄마 어깨에 머리를 눕히고, 아침에 눈을 뜨면 잠을 온전히 깰 때까지 내게 붙어있었지. 네가 그만 됐다는 신호를 보내기 전에 내려놓으면 영영 버림받은 것처럼 서러운 눈물을 쏟아내곤 했다. 육아휴직이 끝나고 널 봐주실 분을 구할 때 가장 걱정되는 게 그 점이었어. 다행히 기꺼이 안아주고 토닥여 주시는 어른을 만나 넌 엄마가 없는 시간에도 즐겁게 지내 주었고, 분리불안을 걱정했던 게 겸연쩍으리만치 순조롭게 이별에 적응하는 듯 보이더라. 출근 사흘째 저녁이었던가. 비탈길을 한달음에 올라오느라 흘린 땀이 무색하게 엄마, 한 번 부르고 냉장고 속 산딸기에 눈 돌리던 널 보며, 어이없어 웃었지만 한편 안도했었다.
 
복귀 후 첫 주말. 오랜만에 함께 맞는 햇살의 행복 속에서, 잠에서 막 깬 너와 눈을 맞추며 엄마는 습관처럼 팔을 벌렸지. 그런데 너는 마치 이전부터 그래왔던 냥 혼자 침대에서 내려가 방을 나섰다. 순간 엄마 가슴 한 켠이 슬쩍, 무너졌다. 엄마는 어쩜 아직까지 너와 한 몸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어. 기대했던 온기를 거부당한 아침은 좀 멍하게 보냈단다. 엄마 복직에 따른 변화에 적응을 잘 한다고 기뻐했는데, 그 결과로 생겨난 거리를 애달파하는 내 모순 때문에 참 어찌할 바를 모르겠더라.
 
네가 평소와 다른 행동을 또 하고 있다는 건 며칠이 흐른 뒤에야 눈치를 챘다. 엄마와 의견충돌이 생길 때마다 너는 아기답지 않은 사과를 하기 시작했더구나. 눈 한 번 흘기지 않아도, 넌 엄마가 너 때문에 곤란해한단 걸 기막히게 파악하고 다가와 울먹였다. “엄마, 미안해요.”
 
엄마가 네게 실망하면 널 혼자 두고 다시 출근을 할 것 같았을까? 예전처럼 맘껏 떼쓰면 혹시 어느날 엄마가 들어오지 않을 것 같았니? 네 작은 머리에서 어떤 예상과 두려움이 오갔는지 엄마는 알 길이 없다. 다만 네가 미안해요, 하며 다가와 엄말 안을 때마다 느끼는 안타까움이 그 주말아침의 상실감에 젖어있던 날 번쩍 깨웠을 뿐. 네가 스물 한 달만큼의 경험과 능력으로 새 환경에 적응하느라 안간힘을 쓰는 동안, 난 대체 무얼 서운해하고 있었던 걸까.
 
미안하다, 이안아. 너의 성장을 지척에서 목도하는 행복에 벅차 네가 엄마 품 안에서만 자라길 바랐던 걸 고백한다. 네가 혼자 침대를 내려가던 날, 우리 이안이가 엄마의 팔에서 찾았던 안정감을 스스로 느낄 수 있게 됐구나 하고 기뻐했어야 옳았다. 처음 생겨난 너와 나의 거리를 인정하고, 둘 사이 새로 자리한 공간 때문에 지금처럼 불안해하는 일이 없도록 돕는 게 엄마의 몫일 터인데, 응원은 못해줄 망정 사이로 들어온 바람을 맞고 춥다며 호들갑을 떨다니.
 
앞으로 이 간격은 점점 벌어질 테고, 결국엔 네가 혼자서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게 자연스러워지는 날이 오겠지. 그 때는 우리가 종일 같이 있건 지구 반대편에 살건, 이 크고 뜨거운 사랑은 변하는 게 아니란 걸 너도 잘 알고 있으리라 믿는다. 힘차게 날아오르렴. 언제나 돌아와 기대렴. 둥지에 있어주는 지금은 조금 더 네 보드라운 살결에 닿으며 더없는 포근함을 나누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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