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미안해' 편지 공모전 고마워상 수상작]
새롭게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선물해 준 너에게
우리 예쁜 아들 도현에게,
도현아, 어느새 네가 네 살이 되었구나. 아직 엄마에겐 여전히 아기지만 이만큼 커주어 대견하기만 하다. 똘망똘망한 얼굴, 적당히 살이 오른 팔다리, 손을 놀려 그림을 그리고, 그 다리로 뛰어다니고, 예쁜 입으로 무슨 말이든 다 하는 네가 신통방통하기만 하구나.
이 엄마에게 너는 정말 뜻밖의 손님, 예상하지 못한 선물이었지. 모두 내 선택이었지만 잘 못 살았던가 싶은 어느 날, 네가 내게 왔다는 걸 알게 되었단다. 나는 노력해도 아이가 안 생기니 이제 자식 인연은 없나 보다 마음을 비워야 한다는 걸 받아들일 즈음이었지. 더구나 뜻대로 되지 않는 세상일 탓에 엄마의 학업을 마무리하는 것도 점점 늦어져 엄마는 세상이 싫고 사람이 싫고 깊은 무력감에 빠져 있었단다. 그런 엄마를 곁에서 지켜보며 아빠도 못내 아쉽지만 과한 요구로 엄마에게 짐을 안겨주기는 싫었던 것 같아. 자식에 대한 아쉬움이나 아이와 관련한 어떤 이야기도 잘 하지 않았지. 텔레비전에 아이들이 나오면 채널을 돌려버리는 그런 사람이었다.
사실 엄마는 결혼 전 아이를 그리 좋아하지도 잘 놀아주지도 못하는 타입이었어. 그래서 오랫동안 아이를 원하지 않아 이렇게 돼 버린 것 같아 내 탓이라는 생각, 그 벌을 받는구나 하는 생각으로 괴롭기도 했지. 그리고 무엇보다 엄마가 당시에 하던 일이 자꾸 힘들게 꼬여 두 가지를 다 노력해보기는커녕, 하던 일도 포기하고 싶은 마음에 혼자서 움츠러들어 자기 만의 고치를 틀던 시간이었지. 그때. 그때, 아무도 모르게 네가 와줬구나.
그렇다고 너를 만나고 나서 엄마의 삶이 한꺼번에 달라진 것은 아니었어. 오히려 함께 보낸 지난 3년 남짓한 시간 덕분에, 그리고 앞으로 보낼 시간 때문에 너는 엄마에게 좀 더 특별한 존재가 되어가겠지. 너를 만나고 엄마의 삶은 참 많이 달라졌단다. 나만의 시간이란 게 없어졌고, 나를 중심으로 생각하던 시간의 중심에 이젠 네가 있구나. 엄마는 너를 만나기 전에도 결혼 생활을 11년이나 했지만 완전히 나이롱 주부였고,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집이나 차에도 관심이 없던 하루살이였지. 그에 비해 이제 사회생활은 거의 전폐했지만, 김밥 정도는 겁 없이 쌀 수 있고, 집을 넓히려 노력하고, 네게 줄 수 있는 것들을 조금이라도 만들려고 고민하는 그런 엄마가 되었구나.
레비나스라는 프랑스 철학자가 있단다. 대학원 수업 때 읽었던 그 철학자의 이야기가 요즘 종종 생각난단다. 그는 남성 철학자로는 드물게 “아이 낳기”에 대해 이야기를 했거든. 레비나스는 아이 낳기란 용서의 시간과 같은 것이라고 했지. 누군가를 용서한다는 것은 용서받는 사람에게 죄(과오)에 결부된 과거의 시간과 결별하고 새로운 시간을 가능하게 해주지. 그처럼 아이 낳기는 전과 다른 새로운 시간을 선물 받는 것이기에 용서의 시간과 같은 것이란 거지.
그래, 늙었지만 아직은 철없는, 엄마가 되는 중인 내가 너와 보낸 시간이 달콤하지만은 않았어. 앞으로는 더 힘든 시간을 통과해야겠지.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한 거 같아. 내가 너와 만나 이전 삶을 벗어나 너의 엄마인 삶으로 옮겨왔다는 것. 그야말로 시공간의 이동이지. 예전에 내가 얼마나 자유롭게 살았는지 낯설고 종종걸음과 짜투리 시간들로 연명하는 지금이 엄마에게는 행복하단다. 예전에는 행복하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네. 삶에 대해서나 나 자신에 대한 괜한 거리두기로 자기가 지닌 것들을 순하게 긍정하는 법을 잘 몰랐었지. 너로 인해 엄마는 이 순간을 누리는 방법을 조금씩 배우고 있구나.
고맙다, 사랑한다, 너와 함께 엄마로 커나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