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공모전_너의 창.JPG » 한겨레 사진 자료 :: 김대중 님 mayseoul@naver.com

 
<한겨레> 육아웹진 ‘베이비트리’와 출판사 ‘문학동네’는 지난 6월9일부터 30일까지 ‘엄마가 미안해’ 편지공모전을 열었습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그냥 내 곁에 있는 아이들에게 감사할 뿐이라는 부모님들이 많았습니다. 부모와 아이의 소통을 돕고, 자식을 키우는 부모들의 마음을 응원하는 취지가 담긴 공모전이었습니다. 총 113명이 응모했고 각종 다양한 사연들이 올라왔습니다.(babytree.hani.co.kr/letters) 안도현 시인이 심사를 해 사랑해상(1명), 고마워상(2명), 미안해상(5명), 잘할게상(10명)을 선정했습니다. 이 가운데 사랑해상을 받은 편지를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양선아 기자 


['엄마가 미안해' 편지 공모전 사랑해상 수상작]
너의 창이 되어줄게

아들, 사랑하는 내 아들 현우야, 너에게 쓰는 이 글을 네가 이해하고 엄마와 얘기를 나눌 수 있는 날이 올까? 영영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괜찮아. 너만의 방식으로 엄마를 이해할 수 있다는 걸 엄마는 믿어.

햇살 좋던 가을의 주말 오후, 소파에 누워 낮잠을 자던 엄마는 꿈을 꾸었다. 산 위에 걸쳐져 있던 커다랗고 고운 무지개가 엄마 품 속으로 달려드는 꿈을. 예쁜 딸일까 싶었는데 건강한 아들이었지. 2년 반쯤 지난 어느 추운 겨울, 진단 결과를 통보 받던 날에 엄마 아빠는 잔뜩 긴장한 채 덜컹거리는 전철을 아무 말 없이 타고 갔어. 마음 속에서는 이미 각오하고 있었지만, 결과를 듣는 순간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단다. 

“중간 수준의 자폐스펙트럼 장애입니다.”

처음에는 아무에게도 내색하지 못하고 일상이 계속되었지. 엄마를 부르지도 않고 이름을 불러도 돌아보지 않는 너에게 인사한 후 출근하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일하고 퇴근했지. 집으로 오는 퇴근길의 지하철 환승역에 사람이 없을 때만 잠깐씩 울던 나날이었어. 마치 날카로운 유리조각이 온몸에 박히는 것처럼 아팠다. 그리고 휴직 후 치료 ‘전쟁’이 시작되었지. 현우야, 엄마는 그 때 정말 힘들었어. 이상하게 너는 밉지 않은데, 나머지 가족들은 다 밉고 세상도 밉고 신도 미웠어. 가만히 앉아 책장만을 끝없이 넘기는 너를 붙잡고 흔들며 “현우야! 엄~마~라고 해봐! 말 좀 해 보라구!” 소리치다가 지쳐 엉엉 울 때도 있었지. 그 즈음에, 엄마의 선배언니가 네 얘기를 듣고 이렇게 물었지.

 “너, 아이가 그렇게 되어 혹시 창피하니?”

엄마는 머리를 맞은 것 같았다. 세상에서 제일 귀한 내 새끼를 창피한 존재로 여기는 이가 존재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말야. 나도 모르게 이렇게 대답했어.

“아니오. 언니, 저는 제 아들이 창피하지 않아요. 제가 슬프고 힘든 건 현우가 길 잃은 아이처럼 깜깜한 어둠 속에서 살 생각을 할 때마다 마음이 너무 아프기 때문이에요.….그래도 저는 현우가 다른 사람이 아닌 제게 와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는 정신 바짝 차리고 내가 할 일을 생각했지. 그래, 현우는 지금 자기 세계 안에 있어. 그 작은 세계에서 현우는 편안하고 안전하지. 내가 그 세계에서 현우를 완전히 꺼낼 수는 없을 거야. 하지만, 창문을 낼 수는 있잖아? 세상을 보는 작은 창, 조금씩 조금씩 커지는 창 말이지. 내가 아들의 창이 되어주면 되는 거야.

그로부터 일년 반, 여러 선생님들과 길고 지루한 치료를 견디어내는 네가 너무나 기특하고 자랑스럽다. 힘들어도 뭔가를 새로 깨우치려 애쓰고, 무서워하는 그네도 열까지 세면서 앉아 있으려 애쓰고, 청각이 예민해서 소음을 견디기 어려우면서도 사람 많은 식당에서 점잖게 밥도 잘 먹는 것도 감사하고, 아침에 일어나서 ‘현우는 엄마 아~들~’ 하면서 엄마 품에 안기는 모습도 감사하고, ‘토마토 안먹어요오, 참외 주세요오~’하고 예쁜 입술을 오므리고 말하는 것도 감사하고.. 무엇보다도 ‘현우는 늘 밝고 신나고 행복한 아이’라고 선생님들께서 말씀해 주셔서 감사할 뿐이야.

현우야, 너는 앞으로 좋은 일도 겪겠지만 힘든 일도 많이 겪겠지. 의사소통이나 대인관계가 어려워서 오해도 많이 받을 것이고, 뭔가 표현하고 싶은데 방법을 몰라 답답하겠지. 하지만 엄마는 네 안에 있는 ‘성장의 힘’을 믿는단다. 너는 세상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다른 것 뿐이고, 그것이 조금 불편한 것 뿐이고, 대신 네게는 남들보다 섬세한 감각과 밝은 마음이 있으니 다른 사람의 방식도 조금씩 배워나갈 수 있을 거라 믿는단다.

자폐성 장애는 너무나 다양해서 햇빛이 여러 색으로 갈라지듯 ‘스펙트럼’이라 표현한다지. 너의 태몽이 무지개였던 것이 어쩌면 엄마에게 이걸 알려주려 했던 건가 봐. 빨주노초파남보 아름다운 색을 가진 나의 아들아, 너의 그 무지개가 점점 자라는 만큼, 엄마는 더욱 큰 창이 되어 줄께. 네가 멋진 세상 풍경을 놓치지 않고 볼 수 있도록. 네가 자리를 박차고 창을 열어 세상 속으로 훨훨 날아 뛰어드는 그 날 까지.

사랑하고 사랑하고 또 사랑한다.

2014년 6월 28일 금요일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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