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공모전_언제나아군2.JPG » 한겨레 사진 자료 ::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엄마가 미안해' 편지 공모전 미안해상 수상작]

지금 사랑하지 않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야


안녕? 동헌아

비가 오려는지 날이 어둑어둑 해. 하긴 벌써 유월의 반이 지났으니 갑작스레 비가 쏟아진다고 해도 이상할 일도 아니지.


  동헌아, 너는 어렸을 때부터 유난히도 움직임이 많은 아이였지. 아래층에 얼굴을 들 수 없을 정도로 하루 종일 쿵쿵거려 언제나 엄마 신경을 곤두서게 만들었고. 남자아이라면 으레 그러기 마련이라는 할머니의 위로에도 엄마는 순간순간 어떤 불안감에 소름이 돋을 때가 있었어. 그런데 네 밑으로 동생 두 명이 더 태어나고 엄마는 동생들을 먹이고, 재우고, 씻기는 데에도 숨을 헐떡이느라 정작 어린 오빠였던 네게 팔 하나를 내어주지 못했어. 그러는 사이 너는 어느 덧 제법 굵은 목소리를 내는 5학년이 되어 버렸고.


  그래, 처음 네가 한쪽 눈을 깜빡이기 시작한 것은 3학년 가을이었을 거야. 그것을 사람들은 틱이라고 부르더구나. 엄마는 인터넷에서 여러 경우를 봤어. 일시적으로 나타날 수도 있고 성인까지 지속 될 수도 있다고 했어. 엄마는 전자를 믿고 싶었어. 그래서 네가 힘들어 하는 공부방도 쉬게 하고, 해가 지도록 운동장에서 뛰어 놀고 들어오는 너를 반갑게 맞아 주려고 애를 썼어. 그런데 너는 올 봄에 마치 고장 난 장난감처럼 고개를 까딱까딱 했지. 때론 코를 킁킁 거리면서 세 가지를 한꺼번에 하기도 했어


동헌아, 결국 소아정신과에서 넌 ADHD와 틱이라는 진단을 받았지. 약물치료도 불가피 하다고 했어. 그 후로 몇 군데를 더 다니고서야 운동치료를 시작했지. 다른 이에게는 비교적 간단한 동작을 너는 참으로 힘들어 했어.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 못 된 걸까 하며 엄마는, 너를 눈을 깜빡이기 이전에 시간으로 되돌려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타올랐지. 분명 재채기처럼 참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 모습을 바라보는 엄마는 너무 불편해서 눈을 감거나 일부러 외면했어


언젠가 그랬지. “엄마 나, 학교에서나 친구들과 놀 때는 별로 안 하는 것 같은 데 집에서 엄마가 보고 있으면 더 하고 싶어져요엄마는 비명을 지르고 말았어. 네가 증상을 보일 때마다 엄마가 어떤 눈빛으로 너를 대하는지 너는 다 알고 있었던 거야. 그래서 그 팽팽한 긴장감에 놓인 너는 자꾸 더하게 되었고. 미안해. 동헌아, 엄마가 미안해. 어리석은 엄마는 이제야 깨닫는다. 아무 증상 없는 너도 중요하지만 눈을 깜빡이는 너, 고개를 까딱까딱 하는 너, 코를 킁킁거리는 너, 지금의 모습 그대로의 너를 안아 주고 사랑해 주어야 한다는 것을.


동헌아, 외할아버지가 이맘때 돌아가신 것 알고 있지. 그때 엄마 나이 열일곱 살 이었어. 청개구리는 엄마 무덤이 떠내려갈까 개굴개굴 울었다지만, 외할아버지를 미워했던 엄마는 굵은 장대비에 꽃상여가 젖을까봐 울었어.


지금 사랑하지 않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야. 그렇지?

아파트 화단에는 아파트만큼 오래된 자귀나무에 꽃이 활짝 피었어. 너와 엄마는 떨어진 자귀 꽃을 주워 향을 맡으려 콧구멍을 벌렁대며 킥킥 웃었지. 위대한 순간은 바로 그런 때가 아닐까? 엄마에게 장마가 시작되는 이 계절은 언제나 슬픔이었지만 이제는 자귀 꽃이 피는 때라고 기억하고 싶어.

오만한데다가 실수투성이 내게 엄마라는 이름을 처음 붙여 준 동헌아,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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