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미안해' 편지 공모전 고마워상 수상작]
그래도, 네가 나의 전부는 아니란다.
예원아
어둠 속에서 곤히 잠든 네 얼굴을 쓰다듬으며
가만히 불러본다.
나의 딸, 예원이...
그렇게나 오래도록 엄마의 애를 태우다
이게 운명인가 보다, 슬픔과 절망이 체념과 수긍으로 변해갈 무렵
선물처럼, 기적처럼 찾아온 너.
너를 품에 안아본지 어느덧 18개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엄마는 너를 간절히 기다리던 그 시절의 어느 한 순간을 살곤 한단다.
아마 그 시간이 너무 길었기 때문일거다.
엄마는 서른 한살이라는,
다른 사람들보다 비교적 늦은 나이에 아빠를 만나 결혼했다.
그리고 서른 아홉, 8년을 오롯이 너를 기다리며 보냈단다.
그 시절 엄마는
너를 기다리는 시간이 엄마 인생의 모든 것이 되지 않길 바라며 무던히 경계했지만
무슨 일을 하든 누구를 만나든 결국 생각과 마음의 끝은
아직 엄마에게 오지 않은 네게 닿아있곤 했었지.
그 긴 터널을 어찌 지나왔는지,
그 시간이 엄마라는 사람에게 어떤 무늬를 남겼는지
구구절절 적어 보려다, 그만 지운다.
매일 매일 엄마의 눈을 바라보는 너,는
어쩐지 그 의미를 모두 알 것 같아서다.
예원아
세상의 많은 부모들이 육아의 고단함에 대해 이야기한다.
엄마 또한 하루 하루 에너지 넘치는 너를 돌보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너를 키우는 일은
너를 기다리던 8년 동안 머리 속으로 상상해 오던 것과는 많이 다르더구나.
18개월 인생이 저지를 수 있는 모든 미운 짓에
인내심의 한계를 느껴 눈을 흘기고 작은 네게 버럭 소리를 지르는 일도 많다.
엄마가 스스로에게 가장 실망스러운 건 너에 대한 욕심이 자꾸만 커져간다는 것이다.
처음엔 네가 와주기만 해도 좋겠다 싶었는데
그 다음엔 건강한 아이를, 이왕이면 예쁜 아이를 원하더니
요즘은 걸음도, 말도, 발육도 평균보다 빠르길 바라며
은근히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는 일도 생기더라.
그러면서 너의 친가나 외가같은 다른 가족들은 물론
엄마와 오랫동안 인연을 이어오던 다른 이들,
나아가서는 우리 사회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옅어져
오로지 너만 바라보고 너만 염려하고 너만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더구나.
입으로는 '내 아이만 잘 지켜선 내 아이를 잘 지킬 수 없다'고 떠들면서
정작 가족 이기주의 아니, 내 아이 이기주의에 갇혀
너를 제외한 모든 것들에게 엄마가 가진 것을 조금도 나눠 주려 하지 않았다.
예원아
이 편지는 너를 향한 엄마의 사랑을 토로하는 간증문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엄마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너 이외의 가치 있는 것들을 잊지 않겠다는
일종의 결의문이기도 하다.
세상에 귀하지 않은 자식이 어디 있겠냐마는
너 또한 내게 말로 다할 수 없을 만큼 소중하고 소중한, 예쁘고 예쁜 딸이다.
그렇지만,
네가 엄마의 전부는 아니란다.
엄마는 너를 잘 키우기 위해서라도
엄마의 인생을 소중히 생각할 것이고
다른 가족과 이웃과 우리 곁의 또 다른 삶들에 대한 애정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너를 안은 감동으로 생명을 지닌 모든 것들을 바라볼 것이고
너를 기다리던 그 마음으로 세상에 대한 관심과 참여를 게을리 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함께 나누는 시간들이
너와 나 모두가 성장하는 시간이길 바란다, 예원아.
그럴 수 있길 간절히,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