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704324_P_0.JPG » 한겨레 사진 자료 :: 곽윤섭 기자 <kwak1027@hani.co.kr>


['엄마가 미안해' 편지 공모전 잘할게상 수상작]
우리의 여행

네가 세상에 나와 처음으로 뜨거운 울음을 울던 그 순간, 엄마는 가장 먼저 네 인중을 살폈단다. 
너를 뱃속에 품고도 밤낮없이 바빴던 엄마에겐 
복잡한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시집을 읽는 것이 유일한 낙이자 너를 위한 태교였단다. 
그 때 읽었던 시 중에, 
‘...천사는 쉿, 하고 내 입술을 지그시 눌렀고 그 때 내 입술 위에 인중이 생겼다‘* 는 구절을 
제일 좋아했는데 천사의 손놀림이 네 입술 위에도 예쁘게 새겨졌는지 무척 궁금했거든. 
건강하게 태어나 준 네가 무척 고마우면서도 엄마는 아무래도 미안한 마음이 사라지질 않아서 
네가 기침이라도 할라치면 늘 가슴이 조마조마했지.

임신 초기의 장거리 비행이 위험할 수도 있다는 걸 잘 알면서도, 
엄마는 회사에서 주어진 출장업무를 거절할 수가 없었어. 
엄마가 맡은 일이니 잘 해내고 싶은 욕심 때문이기도 했지만, 
아직까지 한국사회에서 임신과 육아는 그저 사적인 사정에 불과할 뿐이라서 
엄마는 차마 거절할 용기를 내지 못했어. 
결국은 영문으로 된 진단서까지 받아 가방에 넣고 세계 일주와 다름없는 힘든 일정을 감행했지. 
뉴욕에서도, 모스크바에서도 일을 마치고 숙소 침대에 누우면 뱃속의 너를 쓰다듬으며 말했지. 
엄마가 미안해, 미안해. 정말 미안해.

네가 세상에 태어나고 얼마 되지 않아 엄마는 또 미안한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구나. 
90일의 출산휴가는 터무니없이 짧기만 했고, 
백일도 되지 않은 너를 두고 출근을 하려니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았지. 
육아휴직이라는 제도가 있긴 하지만 계약직인 엄마는
직장을 잃을까 불안한 마음에 휴직은 일찌감치 포기했단다. 
좀 더 안정된 직장을 가지지 못한 스스로를 원망하며 엄마는 또 그렇게 네게 미안해졌구나. 
넌 아직 엄마 품이 제일 좋을 텐데, 같이 있어주지 못해서 미안해.

이렇게 미안한 엄마에게 괜찮다고 말이라도 해주듯 
매일처럼 환한 눈웃음과 귀여운 옹알이를 선물해주어서 정말 고마워. 
회사일과 집안일로 피곤한 엄마에게 보상이라도 해주듯 
일찍부터 밤잠을 곤히 잘 자주어서 고마워. 
양쪽 허벅지에 큰 바늘로 예방접종 주사를 맞은 날에도 울지도 보채지도 않아서 고마워. 
생각해 보면 이렇게 고마운 일이 많은데 왜 엄마는 고맙다 말하면서도 자꾸만 슬퍼질까?

네 심장소리를 처음 듣던 날, 의사 선생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지. 
이제부터 엄마와 아기가 임신 기간 동안 함께 여행을 떠나는 것이라고. 
우리 둘은 여행의 동반자이자 서로에게 든든한 후원자인 셈이라고. 
네가 세상에 태어나고도 너와 엄마의 여행은 계속 이어지고 있지. 
날마다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배우고, 깨달으면서 하루하루 성장하는 우리의 여행. 
앞으로 함께 여행할 시간이 더 많이 남은 것에 감사하며, 우리 서로에게 멋진 여행 파트너가 되자.
엄마의 세계가 넓어지는 만큼, 너의 세계도 넓어지리라 믿으며 엄마는 오늘도 열심히 살아갈게. 
사랑한다, 아들.
 
*심보선, <인중을 긁적거리며>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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