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오후 아기띠에 딸을 들쳐 매고 집을 나섰다. 이날 새벽 2시까지 야간근무를 한데다, ‘아침형 아기’인 딸 덕분에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해 피곤에 쩔어있었다. 편의점에서 카페인 음료를 하나 사서 원샷 한뒤 병원으로 가는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다행히 딸은 바로 곯아 떨어졌다. 평소 병원에 갈 땐, 아내와 함께 차를 운전해서 가지만 아내가 허리디스크로 몸져 눕는 바람에 나 혼자 가게됐다. 병원에서 MRI 검사 결과를 보러 가는 것이기에 어쩌면 나혼자 가는게 낫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딸은 원인 모를 혈변으로 두어달을 고생했다. 동네병원 2곳을 들렀을 땐 한 곳에선 바이러스성 장염, 다른 곳에선 세균성 장염이라 했다. 한달이 넘도록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 수술 받았던 대학병원에 갔더니, 유단백 알러지가 있는 것 같다고 해서 특수분유를 먹이고 초음파로 경과를 지켜보자 했다. 한달전 다시 찍은 초음파에서 “장에는 문제가 없는데 간에 뭐가 보인다”며 MRI를 찍을 걸 권했다.

 

이미 태어나자 마자 큰 수술을 받았던 아이인지라, 병원에서 한마디만 하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건 당연했다. 이전에도 폐에 문제가 있다는 진단 때문에 한동안 마음 고생을 했는데, 나중에 별 걱정 안해도 된다는 결과를 받아본 터였다. 유단백 알러지로 고생한 뒤 겨우 적응이 돼 재롱이 늘고 있는데, 간에 또 문제가 있다니. 별 것 아닐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스멀스멀 걱정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지난 8일, 휴가를 내고 아이를 낮잠을 재우지 않고 공복을 유지한 채로 병원에 가서 MRI를 찍었다. 움직이면 안된다고 해서 수면제를 먹였는데 잠투정이 심한 아이가 3분도 안돼 곯아 떨어졌다. 20~30분 뒤에 촬영장에서 나온 아이는 물에 젖은 솜마냥 축쳐져 있었다. 저녁에 집에 돌아온 딸은 다음날까지 12시간을 내리 잤다. 밤새 혹시 무슨 문제가 있는건 아닌지, 코에 귀를 가져다 대기도 여러번이었다. 아내나 나나 마음이 너무 쓰리면서도 제발 별일 아니길 바라는 마음 뿐이었다.

 

그리고 또 일주일. 간에 종양이 있는 경우는 어떤 경우인가를 훑어봤다. 검색결과, 악성종양이 아니길, 양성종양이더라도 치료가 필요 없는 혈관종이니 선종이니 이런 것이길 계속 기도했다. 야간근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아무도 없는 거리에서 하늘에 떠 있는 달님을 바라보며 소리 내어 우리 딸 안아프게 해달라고 기도도 했다.

 

결과를 보러간 날, 병원 진료는 한시간 정도 지연이 됐다고 했다. 땀 많은 아빠를 닮은 딸은 어느새 깨어 땀에 흠뻑 젖은 채로 나를 보고 방긋 웃었다. 드디어 우리 딸 차례가 돌아와 의사를 마주했다. 결과는 당황스러울 정도로 간단했다.

 

“MRI 결과는 별거 아니네요”
“이상없는 건가요? 아. 다행이다”
“네, 비장이 근처에 있었던 건데, 초음파로는 잘 안보이거든요”
“아 그럼 간에 뭐가 있었던게 아닌건가요?”
“네. 걱정하셨어요?”
“그럼 걱정을 하지 안하겠어요?”

 

아이가 수술을 받고 장기들의 위치가 일반 사람들과는 조금씩 달랐던 건데, 그게 초음파로는 제대로 안보였다. 뭐 그런 취지의 의사의 설명이 이어졌다. 결론적으로 아무 이상이 없단 거였다. 아마 물어보지 않았다면 이 설명도 나오지 않았을 거였다. 진료실 안에선 별거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밖으로 나와보니 짜증이 엄습했다. 촬영결과 병명 진단이 안나오는 MRI는 건강보험 적용이 안돼, 77만원이나 냈고, 실손보험으로도 40%밖에 돌려받지 못했다. 병원에서 일부러 그랬겠냐만은, ‘제대로 안 보인’ 초음파의 대가는 한달 가량의 마음 고생과 40여만원 상당의 예상 못한 지출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잠투정 하는 아이를 아기띠에 안아 재웠다. 뭔가 스트레스를 풀어야 겠단 생각에 청양고추만큼 맵다는 볶음면을 끓여 우걱우걱 밀어넣었다. 땀을 흥건히 빼낸 뒤 속이 쓰려 냉장고에서 맥주를 찾았지만 마침 다 떨어져 냉수를 벌컥벌컥 들여 마신뒤 딸을 엄마 옆에 눕히고 잠을 청했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하지만, 솥뚜껑 보는 일은 이미 족하다. 이젠 제발 솥뚜껑 비슷한 거라도 보고 싶지 않다. 아이 데리고 병원 갈 일이 다시는 안생겼으면 좋겠지만, 아직도 종합병원에 정기검진 목적의 진료예약 3건이 남아있다. (털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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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우 기자
포스트모던을 바라보고 있는 시대에 전근대적인 종갓집 종손으로 태어나 모던한 가족을 꿈꾼다. 2013년 9월에 태어난 딸을 키우며 유명한 기자보단 사랑받는 아빠·남편·아들이 되는 것이 삶의 목표. 회사에서 2분 거리인 자택에서 딸에게 재롱떠는 것이 삶의 낙. 2010년 <한겨레>에 입사해 사회부를 거쳐 편집부에서 일하고 있다.
이메일 :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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