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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는데 이렇게 시간이 오래 걸릴 줄이야! 지난해 5월 복직하고, 적어도 가을이 되기 전에는 쓰겠지… 이번 겨울엔 쓰겠지… 설마 해를 넘길까?… 했던 글을 이제야 쓴다. 해를 넘겨, 그것도 1월을 지나 2월, 입춘을 넘겨. 지난 9개월, 나는 몸으로나 마음으로나 참으로 집-직장-집-직장을 반복하는 모범생 생활을 하였던 것이구나!
 

자자, 시간이 없으니 제 사연을 모르는 분들은 이전 글을 참고하시라~ ㅎㅎ


잘 먹고 잘 자란 우리 아기는 이제 생후 15개월이 됐다. 돌 지나 젖을 뗀 엄마는 이제 육아휴직을 마치고 회사로 복귀하게 됐고 아빠도 다니던 회사를 계속 다닌다. 결론은? 적어도 월~금, 매일 오전 9시~오후 6시 사이에 아기를 맡아줄 누군가가 필요하다! 아이는 아직 혼자있기엔 너무 작고 약하므로.


"누가 주양육자가 될 것인가?" 우리 부부는 이 고민을 가장 오래 했다. 그리고 선택했다. 주양육자의 자리에서 부모가 물러서지 말자고. 남편은 (육아휴직을 하지 않는 대신) 누가 뭐래도 칼퇴근을 하겠다 결심했고, 그 결심을 믿고 이사를 했다. 남편 회사 바로 옆에 붙어있는 아파트로. 그리고 옆 아파트 단지 1층에 있는 가정형 어린이집도 눈물겨운 과정을 거쳐(이것도 이전 회 참고) 구했다. 귀찮은 평가인증도 받지 않고, 선생님 불편하게 하는 CCTV도 없는, 원장 표정이 밝고 의사표현이 솔직한 아주 내 맘에 쏙 드는 어린이집이었다.(보육교사의 노동인권에 관심있는 어린이집이어야 제대로된 사람을 키워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편임, 암튼.)


복직 전날 밤, 나는 아주 무서운 표정으로 식탁에 앉아 초등학교 이후 그려본 적 없는 ‘생활계획표’를 그리기 시작했다. 아침부터 밤까지 아주 촘촘한 계획표였다. 그것은 나의 생활 계획표라기 보다는 남편의 것에 가까웠으므로, 결심이 아닌 명령에 가까웠다.


남편의 회사와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간 것의 특장점은 출퇴근 시간의 단축이다. 자전거로 5분 거리의 회사에 다니는 덕분에 남편은 아침이면 8시반이 넘어서 집을 나서게 됐다. 나역시 그 정도 시간에 나서면 되었다. 그래서 복직 뒤 계획 1번이 도출되었다. “아침은 무조건 세 식구가 함께 먹는닷!”


그 즈음 나의 아기는 저녁 8시30분에 잠들었다가 오전 7시쯤 칼처럼 일어났다. 덕분에 우리 부부 모두 아침 알람을 따로 맞출 필요가 없을 정도로! 여기서 제 2 원칙! 전날 술을 먹어 숙취로 몸이 너~~무 힘들지 않은 이상, “아기가 일어나면 부부도 함께 일어나 아침을 시작한닷!”


보통 맞벌이 부부의 아침이 전쟁같은 것은, 아기는 깼고 피곤에 찌든 엄마도 일어나서 아기 챙기랴 밥 차리랴 어린이집 가방 챙기랴 자기 화장하랴 정신없는데, 아빠는 계속 일어나지도 않다가 이건 뭐, 밥을 차려놔도 피곤하다는 둥 헛소리를 해서 결국 엄마가 분노하게 되는 패턴 때문이라 생각한다. 이 패턴은 ‘분노의 악순환’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악’이다. 아예 이런 패턴에는 발을 들이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7시에 함께 일어나 저녁밥까지 6인분 정도의 밥을 하고, 국을 끓인다. 7시40분~8시10분에 셋이 둘러앉아 밥을 먹는다. 아기에게 밥을 ‘먹이는 것’이 아니라 엄마아빠도 함께 맛있게 ‘먹는다’. 이 패턴으로 생활을 해봤더니 아침 시간이 엄청 여유로워졌고 심지어 아침에 아이와 함께 10분 정도 산책하는 일상도 가능해졌다. 교통 상황 때문에, 회사 사정 때문에 아침 7시에 출근하시는 분들께는 죄송한 여유다. 하지만 이런 패턴을 만들고자 이사를 감수했고, 이건 하나의 예에 불과하니 그냥 들어주시기 바란다.


9시 전에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면, 안타깝게도 아이가 늘 첫번째다. 20명 정도가 다니는 이 가정형 어린이집에는 대부분의 아기들이 9시30분부터 등원한다. 그리고 오후 3시30분부터 찾아가기 시작해 5시 정도가 되면 대부분 집에 간다. 이 흐름에 맞추기 위해 따로 오전·오후 시간제 도우미를 고용하는 맞벌이 부부들도 꽤 있다고 들었다. 직장 어린이집은 이보다 사정이 나아서 오전 8시 이전에 맡기고 저녁 8시 이후에 찾는 이들도 많다고 한다, 여튼.


그리하여 6시가 되면 남편이 퇴근을 한다. 야근을 해야하는 상황이어도 일단 6시에 사무실을 나서서 아이를 찾는다. 어린이집까지 가는 시간이 걸리므로 대개 6시20분쯤 아기를 찾게된다. 아기는 어린이집에서 꼴찌로 하원한다. 미안한 마음이 많지만 그 시간을 한두시간 앞당기기 위해 따로 수를 내지는 않았다. 대신 원장님의 귀여운 두 딸이 오후 5시가 넘으면 각각 초등학교와 유치원을 마치고 엄마가 일하는 어린이집에 와서 우리 아기와 함께 놀아주고 있으니 다행이라 생각한다.


여기서 세번째 원칙, 저녁밥은 적어도 엄마아빠 중 누군가 한 명이 아기와 함께 먹는다. 아침에 저녁 밥과 국까지 만들어 놓았기에 집에 와서 차려 먹기만 하면 된다. 남편이 야근해야 하거나 회식이 있다면 나도 퇴근을 서두른다. 서로 파트너십을 잘 발휘하기 위해서는 대부분의 일정을 적어도 한 주 전에 맞춰놓으면 좋다. 만약 부인이 8시쯤 집에 도착한다면 남편은 바통 터치를 하고 다시 회사로 향해 야근을 하거나 회식에 참여한다.


고맙게도 우리 아기는, 복귀 뒤 초반 6개월동안 매일 저녁 8시30분에 잠자리에 들었다. 덕분에 우리 부부는 아이를 재우고 빨래를 널고, 반찬을 만들거나 청소를 할 수도 있었다.


마지막 원칙은,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 동안 최대한 몸과 마음을 다해 즐겁게 놀자는 것이었다. 하루 종일 아이를 떼어놓는 것데 대해 미안한 마음은 어떤 부모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미안함으로 아이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없다. 아침에 눈을 뜬 뒤 출근하기 전까지 1시간 30분, 저녁에 아이를 찾은 뒤 집에와서 아기가 잠들기까지 2시간30분 동안 함께 먹고, 웃고, 놀고, 목욕하며 부대끼자는 게 마지막 원칙이었다.


그렇게 8개월을 지냈다. 어느 해보다 내 인생에서 바쁜 나날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행복했던 적이 있나 싶기도 한 시간이었다. 아이, 특히 36개월 미만의 아기를 키우는 데 있어 부부간의 파트너십, 괜찮은 보육시설과의 파트너십이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리고 정말 내가 아기를 키울 수 있는 시간적, 정신적 여유가 있는가 하는 부분도 생각해보고 아이를 낳아야겠구나, 싶기도 했다.(나처럼 갑자기 임신한 경우, 별 수 없긴 하지만!^^;;)


거의 별 도움이 안되는 국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건강한 마음으로 보육시설을 하려는 고마운 이들을 제대로 지원이라도 해주는 것 뿐이다. 또한 적어도 6시에는 퇴근해서 가족과 함께 ’저녁이 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일, 그렇게 살고자 하는 이들이 눈치보며 살지 않게 해주는 일이다. 더 많은 이들이 일터 근처에 집을 구해 지옥철, 만원버스에 시달릴 시간에 아이와 함께 밥을 먹을 수 있다면 그 또한 좋은 일이다.


쓰고 싶은 얘기가 많더니만, 이야기가 너무 커졌다. 아무튼 3세 이전에 어린이집 보내기에부터, 시터나 친정·시댁 도움 없이 맞벌이가 아기 키우기까지 수많은 불안에 맞서 도전을 해야했던 우리 부부는, 이제야 한숨을 돌린다. 며칠 뒤면, 아기가 두 돌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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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지난 가을 집 앞에서 한 컷(위), 아래는 어린이집에서 같은반 친구들과 깍두기 담그기에 도전 중인 아이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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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지선 기자
<한겨레21> 기획편집팀, 사회팀, <한겨레> 사회부 24시팀을 거쳐 현재 오피니언넷부에서 일하고 있다. “결혼 생각 없다”더니 한 눈에 반한 남자와 폭풍열애 5개월만에 결혼. 온갖 닭살 행각으로 “우리사랑 변치않아” 자랑하더니만 신혼여행부터 극렬 부부싸움 돌입. 남다른 철학이라도 있는양 “우리부부는 아이 없이 살 것”이라더니 결혼 5년만에 덜컥 임신. 노키드 부부’로 살아가려던 가련한 영혼들이 갑자기 아기를 갖게되면서 겪게되는 좌충우돌 스토리를 나누고자 한다.
이메일 : sun21@hani.co.kr      
블로그 : http://plug.hani.co.kr/sun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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