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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아쓰기 점수는 잊어라, 배우는 과정이 중요

양선아 2014. 01. 14
조회수 16451 추천수 0

IMG_3917.JPG » 구하기 쉬운 동물이나 사물 포스터를 벽에 붙인다. 해당되는 단어를 포스트잇에 써서 단어카드를 만든다. 적절한 그림에 적절한 단어를 붙이는 놀이를 하면 아이는 자연스럽게 한글을 익힐 수 있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아들이 7살인데 아직까지 책도 잘 못 읽고 글씨도 잘 못 써요. 요즘 초등학생들은 받아쓰기 시험 보면 백점 맞는 아이들이 많다던데 불안합니다. 아들 친구들 중 글자도 쓰고 책도 혼자 읽는 아이들 보면 마냥 부러워요.”

 

주부 이은미(38·서울 동대문구)씨는 아들의 내년 학교 입학을 앞두고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주변 엄마들이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한글은 떼고 들어가야 한다고 얘기하기 때문이다. ‘한글 떼기’는 어느새 학교 들어가기 전 아이들이 달성해야 하는 목표가 됐다. 어떤 부모는 입학 전 한글을 떼야 한다는 생각에 4~5살부터 아이에게 한글 학습지를 시킨다. 6~7살 때부터 ‘읽기 독립’을 시키겠다고 작정하는 부모도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부모가 글자를 읽고 쓰는 것에 너무 집착하면, 아이들의 호기심과 배우는 즐거움까지 빼앗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아이에게 한글 교육을 할 때 부모들이 어떤 점에 주의해야 하는지, 한글 교육을 즐겁게 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이 있는지 알아봤다. 

 

받아쓰기 100점 목표를 버려라

 

“받아쓰기 시험에서 40점, 50점 맞을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아이 전체 인생으로 봤을 때 초등학교 1학년 받아쓰기 점수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알고 있잖아요?” 

 <대한민국 어린이집>(르네상스 펴냄)의 지은이 전가일 장안대 유아교육학과 교수는 부모들의 ‘받아쓰기 백점’에 대한 집착이 아이들의 언어 능력을 저하한다고 말한다. 받아쓰기 점수가 낮다고 해서 아이의 의사소통능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받아쓰기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이가 자신의 생각을 잘 표현하고 말할 수 있는지, 다른 사람의 얘기를 귀 기울여 듣는 지다. 또 책과 친근한 아이인지 여부가 더 중요하다. 이런 능력이 있고 언어적 환경이 적절하게 제공되면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문자를 알고 싶어한다. 그때 아이에게 글자를 알려줘도 충분하다.


유아 교육기관의 표준보육과정이나 누리 과정을 살펴봐도, 글자 쓰기와 읽기 교육에 대한 적정 시기를 정해놓지 않았다. 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의 네 가지 영역의 활동을 아주 어릴 때부터 지속적으로 하게 해서 자연스럽게 글자를 익혀나가도록 설계돼 있다. 그런데 일부 부모들은 이러한 교육 과정을 무시한 채 아이가 이른 나이에 글자를 정확히 쓰고 읽기를 기대한다. 학교 입학 전부터 받아쓰기 백점을 목표로 아이에게 스트레스를 준다. 아이에게 글자를 아는지 모르는지 확인하려 하고, 맞춤법을 완벽하게 가르치려 한다. 전 교수는 “현재의 보육 과정을 충실하게 따르다 보면,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글을 읽고 쓸 수 있게 돼 있다. 부모들이 너무 조급증을 가지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전 교수는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때 7살에 한글 쓰기를 한 달, 보름, 또는 두 달 만에 떼는 경우를 적지 않게 목격했다고 전했다. 전 교수는 “아이마다 언어를 배우는 속도는 다르다. 아이의 속도에 맞춰 부모와 교육자가 따라가면 된다. 문자로서의 쓰기는 7살에 시작해도 늦지 않다”고 조언했다. 굳이 3~4살부터 한글 교육으로 부모와 아이가 소모전을 치를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23.3.카레.JPG » 실제 프라이팬에 요리 재료를 쓴 카드를 넣고 주걱으로 휘젓기 놀이를 하면 아이가 더 즐거워한다. 강진하씨 제공

  
한글 교육,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

한글 교육을 할 때 글자를 정확히 읽고 쓰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한글을 배우는 과정 그 자체다. 글을 배우는 과정에서 아이가 자신의 호기심을 충족시키고 배우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문자를 배울 때 ‘억지로 배워야 하는 것’ ‘지루한 것’이라는 느낌을 받으면, 아이가 한글 자체에 대한 거부감을 가질 수 있다. 글자를 배울 때도 즐겁게 놀이처럼 접근하는 것이 좋다. 

 <뚝딱! 엄마랑 한글 떼기, 책이랑 친구되기>(푸른육아 펴냄)의 지은이 강진하씨는 “엄마의 조급증과 섣부른 의욕, 옆집 아이와 비교하는 마음이 한글 교육 과정을 엉망으로 만들 수 있다”고 경고했다. 10여 년 동안 엄마들을 대상으로 ‘한글 떼기 교육’을 가르쳐온 그는 부모의 욕심으로 인해 아이의 호기심이 꺾이고 더 나아가 아이와 부모의 관계마저 나빠지는 경우를 많이 목격했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그는 아이가 글자를 배울 준비가 되어 있는지 부모가 잘 관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아이가 준비가 돼 있는 시기는 언제일까. 글자에 관심을 보일 때다. 예를 들어 아이가 과자를 먹다 과자 봉지에 쓰인 글씨를 보고 “엄마~ 이건 뭐예요?”라고 물어보는 경우가 있다. 또 평소 자동차를 좋아하는 아이가 어떤 자동차를 보며 이름을 물어보기도 한다. 바로 이런 순간을 부모가 놓치지 말아야 한다. 이때 부모가 적극적으로 아이가 궁금해하는 것을 알려주고 반응해줘야 한다. 글자가 쓰인 플래시 카드를 보여주며 알려준다. 그런 경험들이 꾸준히 쌓여 아이는 자연스럽게 글자를 알아간다. 강씨는 “아이가 처음에는 글자 익히는 것이 더디다 가도 나중에 탄력이 붙으면 금방 익힌다. 처음부터 욕심을 부리지 말고 꾸준히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글자에 대해 알려줄 때 “짧게 치고 빠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한꺼번에 너무 많이 알려주려 하거나, 기간을 정해놓고 속전속결로 해결하려 해서는 안 된다. 꾸준히, 천천히 하되, 아이가 조금 아쉬움을 느낄 정도로만 알려주면 아이는 스스로 알고 싶어한다.
 
P1170284.JPG » 우유팩에 물고기 이름을 써서 낚시놀이를 하면 아이들이 즐거워하며 글씨를 자연스럽게 알아간다. 강진하씨 제공

 

아이가 좋아하는 것에 답이 있다


아이가 글자에 대한 호기심을 보일 때까지 기다려야 하지만, 무작정 아이를 방치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출생 이후부터 아이에게 풍부한 언어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한 부모의 지속적인 노력은 중요하다. 아이의 얘기 잘 들어주기, 아이의 연령과 발달 단계에 맞는 책 읽어주기 등을 꾸준히 하는 것이 아이의 언어 능력 향상에 있어 기본이다. 아이의 현재 관심사에 대해 부모와 많이 대화를 하는 것도 어휘력을 늘릴 수 있는 계기가 된다.

강씨는 “한글 교육을 즐겁게 하려면 먼저 아이가 좋아하는 것에서 출발하라”고 말한다. 아이가 물고기를 좋아한다면 물고기 관련 그림책을 아이와 함께 즐겁게 읽는다. 또 플래시 카드를 준비해서 다양한 물고기 종류 이름을 알려준다. 아이가 재밌어한다면 플래시 카드를 물 위에 띄워놓고 낚시 놀이도 해본다. 이런 과정 속에서 아이는 물고기에 대해 알아가는 기쁨을 느끼고, 글자도 자연스럽게 알아가게 된다. 노래를 좋아하는 아이라면 노래 가사를 써서 벽에 붙여놓고 아이랑 함께 불러본다. 자동차를 좋아한다면 자동차 관련 책을 보여주며 자동차 이름을 알려주면 된다. 아이 사진을 붙여놓고 간단한 설명을 쓰고 성장 앨범을 함께 만들어볼 수도 있다. 이렇게 부모와 즐겁게 노는 과정 속에서 아이는 자연스럽게 글자를 익히고, 배우는 기쁨도 알아갈 수 있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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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아 한겨레신문 기자
열정적이고 긍정적으로 사는 것이 생활의 신조. 강철같은 몸과 마음으로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인생길을 춤추듯 즐겁게 걷고 싶다. 2001년 한겨레신문에 입사해 사회부·경제부·편집부 기자를 거쳐 라이프 부문 삶과행복팀에서 육아 관련 기사를 썼으며 현재는 한겨레 사회정책팀에서 교육부 출입을 하고 있다. 두 아이를 키우며 좌충우돌하고 있지만, 더 행복해졌고 더 많은 것을 배웠다. 저서로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자존감은 나의 힘>과 공저 <나는 일하는 엄마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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