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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은 신정을 쇤다. 딸 다섯이 모두 며느리인 탓에 구정엔 다들 시댁으로 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친정식구들은 신정에 모두 모여 덕담을 나누고 부모님께 세배를 드리고 조카들 세배도 받는다. 출가한 딸 다섯에 사위, 손주들이 아홉이나 되니 다 모이면 스무명도 넘는 대가족이다.

 

본래 신정엔 작은 친정집에 모여 엄마가 준비하신 음식으로 점심을 먹으며 서로 만나곤 했었는데 손주들이 늘어나고 장성하면서부터 집이 너무 좁고 불편해 지난해부터 자매들 중 제일 넓은 집에 살고 있는 우리집에서 모임을 하고 있다. 올해는 친정 남동생과 함께 해외 배낭여행 중인 큰 언니가 빠졌지만 나머지 식구들은 변함없이 한데 모여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신정모임.jpg

 

교통사고와 이어진 수술 후에 후유증을 얻어 마음과 몸 고생이 심했던 쌍둥이 자매도 오랜만에 얼굴을 보았다. 가까운 곳에 사는 여동생이지만 너무 바빠서 꼬박 1년 만에 다시 보는 아랫 동생 가족도 반가왔다. 얼마전에 보았던 막내 조카는 그새 또 자란 모습이었다. 나이도, 사는 곳도,  하는 일도 서로 다른 가족들이지만 그래도 1년의 첫 날에 이렇게 같이 모여  이야기 나누고 세배를 하고 부모님께 1년을 살아갈 축복을 받는 일은 내겐 늘 특별하고 소중한 의미가 있다.

 

이번 설엔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제일 큰 조카로부터 이룸이까지 각자 준비해 온 장기를 선보이는 자리도 있어서 모두 많이 웃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반나절의 아쉬운 만남후에 다시 헤어지는 가족이지만 어렵고 힘들 때 일수록 가족은 만나야 하고 서로 보듬어야 함을 새삼 느끼게 된다.

 

친정 모임을 마친 후엔 부랴부랴 다시 준비를 해서 강릉으로 출발했다. 1월 2일이 돌아가신 시어머님의 첫 생신 제사이기 때문이었다. 형님과 동서는 12월 31일에 시댁으로 내려가 장을 보고 음식 장만하는 일을 하고 있을 터였다. 나는 1월 1일 친정 모임을 참석하고 내려가느라 하루 늦게 내려갔다.

 


어머님 생신제사.jpg

 

아버님을 뵌 것은 탈상 후 처음이었다. 형님과 동서네 가족들도 마찬가지였다. 어머님이 살아계셨다면 시댁도 어느 자손의 집에 모여 즐거운 잔치를 열었겠으나 어머님 돌아가시고 맞은 첫 생신은 잔치 대신 제사를 올리며 가족 모두 다시 한 번 어머님의 빈 자리를 비감하게 느껴야 했다.


 

어머님 생신 제사 2.jpg

 

형님과 동서는 내가 오기전에 모든 제사 음식을 다 만들어 놓고 있었다. 나와 동갑인 형님과 나보다 한살 적은 동서는 젊은 사람들이라고는 믿기 힘들 만큼 야무지고 정성스런 솜씨로 제사 음식을 장만했고 일가 어르신들까지 모신 큰 생신상을 차려 모두를 대접했다. 나는 고작 잔심부름과 몇 가지 일을 도우며 허드렛일을 했을 뿐 이다. 매번 큰 일이 있을 때마다 먼저 달려와 큰 일을 해 내는 두 사람에겐 늘 고맙고 미안한 마음 뿐이다.

 

그래도 이렇게 당신의 빈 자리를 든든하게 채우고 있는 며느리들의 정성과 솜씨를 보시며 하늘에 계신 어머님도 분명 기뻐하셨을 것이다. 형제들도 서로 더 살뜰하게 챙기고 있고, 손주들도 한층 더

의젓하게 새로운 길에 나서고 있으니 그토록 애닳아하며 염려하시던 모든 모습들이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친정모임과 시댁모임이 연이어 있어 정신없고 고단했던 새해 첫날들이 지나갔다. 부모님이 계신 풍경과 한 분이 안계신 풍경은 많이 달랐지만 자손들이 다시 부모 곁으로 모여 서로의 안부를 묻고, 조금씩 달라지고 성장하는 모습들을 축복해주고, 새로운 해의 안녕을 기원해주는 마음은 한결같았다.

 

아직 건강하게 우리 곁에 계시는 친정부모님이나 어머님이 떠나셨어도 달라진 환경에 의연하게 적응하시며 우리 곁에 계셔주시는 시아버님이나 모두 소중하고 감사 할 따름이다. 매년 새해 첫 날의 풍경은 조금씩 달라지지만 서로를 아끼고 염려하고 그리워하는 마음이 변함없다면 다시 새로운 날들을 살아 갈 힘을 얻을 것이니 모두가 다 고맙고 또 고맙다.

 

새해는 푸른 말의 해라지. 

너른 들판을 달리는 말처럼 힘차게 씩씩하게 내 앞의 일들을 마주하며 열심히 살아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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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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