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세상 읽기] 영어교육, 진보의 콤플렉스를 깨라 / 이범

베이비트리 2013. 12. 26
조회수 3887 추천수 0


제주도에 이석문이라는 교육의원이 있다. 내가 오륙년 전부터 그를 눈여겨봐온 것은 그가 ‘영어’와 ‘진보’의 함수관계를 풀어갈 실마리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는 해직교사 출신이자 전교조 제주지부장이라는 타이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영어교육 원칙에 동의하는 학생과 학부모를 모아 ‘들엄시민’이라는 대안적 영어교육 모임을 운영했다. 그리고 경쟁과 평가에 매달리지 않는 저비용·고효율 영어교육 방법으로 아이와 부모를 모두 만족시키는 영어교육에 성공하였다. 최근에 이러한 경험담을 담은 <듣고, 즐기고, 소통하자!>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진보로 분류되는 사람들 중에는 현재의 영어교육 풍토에 반감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다. 몇 가지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첫째로 한국 현대사에서 미국과의 관계가 워낙 중시되었던 관계로 영어 구사 능력이 일종의 특권으로 구실했다. 둘째로 기업과 대학을 중심으로 과도한 영어 스펙을 요구하는 경향이 심해지고 있다. 이 두 가지 요인으로 말미암아 셋째로 영어 사교육이 도가 지나친 수준으로 벌어진다. 통계를 보면 사교육 ‘시간’으로 으뜸은 수학이지만, 사교육 ‘비용’으로 으뜸은 영어다.

이러한 반감은 나도 상당 부분 공유하고 있다. 문제는 마땅한 대안이 있느냐는 것이다. 지금은 설령 미국과의 정치적 관계가 소원해지는 일이 벌어진다 할지라도 영어교육 수요가 그리 줄어들지 않을 상황이기 때문이다. 좋은 일자리는 재벌 대기업에 몰려 있는데 이들은 주로 수출로 먹고산다. 자연히 영어 구사 능력을 필요로 하는 업무 비율이 높다. 우리나라 전체 경제를 기준으로 봐도, 경제의 대외의존도가 나날이 높아져 70%였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최근 3년 연속 100%를 넘고 있다.(국내총생산 대비 수출·수입 총액 비율) 흔히들 영어교육 수요를 제어하는 데 성공한 사례로 일본을 언급하는데, 참고로 언급하자면 일본 경제의 대외의존도는 겨우 25%다.

진보가 집권한다 해도 이런 구조적인 특성을 단기에 변화시키기는 어려울 것이다. 현재의 상황을 진정시켜야 하는 당위는 분명하지만, 막연한 미래의 기대에 근거하여 영어 사교육을 줄이라고 학부모에게 요구하는 것 또한 불합리한 일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시급한 일은 단순히 지금의 ‘미친’ 영어교육을 저주하는 게 아니라, 영어교육을 ‘두려움과 피로’에서 탈출시킨 구체적인 성과를 보여주고 이를 확산시키는 일일 것이다.

이석문 교육의원은 이 지점에서 출발했다. 그가 사용한 방법은 흔히 ‘엄마표 영어’에서 활용되는 영상물 보기·듣기에서 출발하는 것이었다. 진보에게 그리 낯선 방법도 아니다. 따지고 보면 엄마표 영어의 원조 중 한 사람인 이남수씨(‘솔빛엄마’라는 별명으로 유명한)도 참교육학부모회 울산지부장 출신이다.

그렇다면 이런 방법을 공교육에서 실현할 수는 없을까? 분명히 있다. 하지만 현재의 공교육으로는 어렵다. 가장 심각한 걸림돌은 공교육이 ‘평가의 변별력’에 매달리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본란 6월6일치 ‘박근혜 대통령님, 잘못 알고 계십니다!’에서 지적한 바 있다. 또 하나의 걸림돌은 공교육이 ‘학교에서 벌어지는 일’만 다루려 한다는 것이다. 영어에 자연스럽게 노출되는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한데, 주당 두세 시간의 학교 수업으로는 역부족이다. 그렇다면 결국 학교 밖 영어 노출 시간을 인터넷·모바일 및 오프라인 모임을 통해 확보해야 한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진보적 영어교육의 시발점은 바로 여기가 될 수 있다. 이를 통해 ‘진보’의 증표가 날카로운 칼날만이 아니라 실용을 감싸는 넉넉함일 수 있음을 보여주어야 한다.

이범 교육평론가


(*한겨레신문 2013년 12월 26일자)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 메일
베이비트리
안녕하세요, 베이비트리 운영자입니다. 꾸벅~ 놀이·교육학자 + 소아과 전문의 + 한방소아과 한의사 + 한겨레 기자 + 유쾌발랄 블로거들이 똘똥 뭉친 베이비트리,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어 찾아왔습니다. 혼자서 꼭꼭 싸놓지 마세요. 괜찮은 육아정보도 좋고, 남편과의 갈등도 좋아요. 베이비트리 가족들에게 풀어놓으세요. ^^
이메일 : hanispecial@hani.co.kr       트위터 : ibabytree       페이스북 : babytree      
홈페이지 : http://babytree.hani.co.kr

최신글




  • 수포자·영포자들 감긴 눈 뜨게 할수 있을까수포자·영포자들 감긴 눈 뜨게 할수 있을까

    양선아 | 2019. 04. 26

    [뉴스AS] 정부 ‘기초학력 보장 강화’ 정책지난해 국가 수준의 학업 성취도 결과에서 중·고등학교 학생들의 기초학력 미달 비율이 늘면서 기초학력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사진은 과거 일제고사 형태로 성취도 평가를 할 때 초등학생들이 시...

  • 키는 안 크고 몸무게는 늘고 식습관은 안 좋고…학생들 건강 ‘적신호’키는 안 크고 몸무게는 늘고 식습관은 안 좋고…학생들 건강 ‘적신호’

    양선아 | 2019. 03. 28

    국내 초·중·고등학생들의 키 성장세는 주춤한 반면 몸무게는 늘어 비만율이 높아지는 ‘적신호’가 켜졌다. 중·고등학생 다섯명 중 한명은 아침 식사를 거르는가 하면, 주 1회 이상 패스트푸드를 먹는다고 답한 고등학생이 무려 80.54%에 이르는 등...

  • 1월 출생아 4년 만에 1만명 줄어…범정부 인구정책 TF 구성1월 출생아 4년 만에 1만명 줄어…범정부 인구정책 TF 구성

    베이비트리 | 2019. 03. 27

    ‘1월 인구동향’ 1월 출생아수 3만3백명 기록2015년 4만1900명 뒤 해마다 역대 최저치인구 1천명당 출생아 6.9명으로 7명대 져통계청 장래인구 특별추계 발표 예정에 이어관계부처·연구기관 ‘태스크포스’ 구성하기로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 영유아 자기조절력은 부모 양육방식에 좌우영유아 자기조절력은 부모 양육방식에 좌우

    베이비트리 | 2019. 03. 25

    아이 아빠가 2~3살 아이들에게 자꾸 스마트폰을 보여줘요Q. 3살과 2살 연년생 남매를 둔 가정주부입니다. 남편과 양육관이 달라 고민입니다. 특히 스마트폰 문제로 다툴 때가 많습니다. 남편에게 아이들과 놀아주라고 하면 주로 스마트폰을 보여줍니...

  • 한유총 차기 이사장 선거, ‘이덕선의 후예’ 김동렬 단독 출마한유총 차기 이사장 선거, ‘이덕선의 후예’ 김동렬 단독 출마

    양선아 | 2019. 03. 20

    동반사퇴 제안했다가 철회하고 단독출마 ‘유아교육법 시행령 반대’ 등 강성 기조 개학연기 투쟁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던 한유총의 차기 이사장 선거에 ‘이덕선 현 이사장의 후예’로 꼽히는 김동렬 수석부이사장이 단독 출마하기로 했...

최신댓글

Q.아기기 눈을깜박여요

안녕하세요아기눈으로인해 상담남깁니다20일후면 8개월이 되는 아기입니다점점 나아지겠지 하고 있었는데 8개월인 지금까...

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