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칼럼

착한 아이 콤플렉스, 속으로 곪는다

박진균 2013. 12. 08
조회수 17767 추천수 0

20131205_1.jpg » 한겨레 자료 사진.


먼저 다음의 체크 리스트를 가지고 아동을 평가해 보세요.
1.  부정적인 감정 표현(싫음, 거절, 분노, 적개심 등)을 잘 못한다.
2.  싫어도 좋다고 하는 등의 거짓 감정을 말한다.
3.  항상 억압하다 보니 두통, 복통 등의 신체적 증상이 나타난다.
4.  부모의 눈치를 지나치게 살핀다.
5.  자기주장 능력이 부족하다.
6.  매사에 주눅이 들어 있다.
7.  항상 자신감이 없다.
(손석한 선생님의 책 ‘지금 내 아이에게 해야 할 80가지 질문’에서 인용한 내용입니다.)
 
리스트에서 3개 이상 항목에 해당한다면 아이가 ‘착한 아이 콤플렉스’를 가질 가능성이 있다고 합니다. 독자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최근에 제 클리닉에 오는 중학교 다니는 여학생 이야기를 해드리겠습니다.
 
아이는 어려서부터 순하고 부모 말을 잘 듣는 아이라서 부모의 손이 별로 필요치 않은 아이였다고 합니다. 동생이 있는 맏이로 태어난 아이는, 부모가 모두 맞벌이로 바쁜 가운데 스스로 알아서 밥도 챙겨먹고 동생도 챙기는 ‘또순이’였다고 합니다. 초교 저학년까지 아이는 받아쓰기도 100점 맞는 등 공부도 곧잘 했습니다. 문제는 초교 5학년 무렵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옷도 꾀죄죄하게 입고 다니고 수줍어하는 이 아이를 몇 몇 아이들이 따돌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아마도 부모가  바쁘고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것이 원인이었을 것입니다. 아이는 그런데 이런 사실을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못했습니다. 혼자 끙끙 앓다가 마음에 큰 멍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공부에 흥미도 잃고 자존감도 내려가고, 마침내는 어떻게 살아야 하겠다는 열정도 서서히 사그라지게 되었습니다. 아이는 6학년 무렵 나쁜 아이들과 어울리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을 받아주고 잔소리도 하지 않으며, 무엇보다 재미있었다고 합니다. 중학생이 되어 아이는 점점 더 나쁜 아이들과 어울리게 되었고, 학교에서도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아이를 때리기도 하고 무섭게 화를 내기도 했는데, 그럴수록 아이는 더 집에 있는 것이 싫어지고 밖으로만 돌게 되었습니다. 클리닉에서의 면담에서 아이는 ‘자신이 나쁜 아이라서 왕따를 당했다’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요즘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고, 그냥 되는대로 재미있게 살겠다’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타고난 성품인 기질을 잘 이해하는 것이 육아에서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저는 이제까지 반복해 왔습니다. 그런데 주로 ‘까다로운 기질’의 아이들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오늘은 ‘온순한 기질’의 아이들에 대해서 조금 이야기하려 합니다. ‘까다로운 기질’의 아이들이란 대표적으로 집중력이 부족해서 산만한 아이들, 예민하고 소심한 겁 많은 아이들, 그리고 고집 세고 반항적인 아이들과 사회성이 부족한 아이들 등이 있었습니다. 이런 아이들이 대략 30% 정도를 차지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온순하고 키우기 쉬운’ 기질의 아이들은 어떤 아이들일까요? 산만하지 않고 차분한 기질과 너무 예민하지 않은 기질을 가지며, 사회성도 좋아서 부모 말을 잘 듣는 경우가 제일 키우기 쉽겠네요. 이런 아이들을 가진 부모들은 신께 감사를 드려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좋은 기질의 아이를 갖게 된 것은 부모의 노력(다른 말로 유전)도 있지만, 부모에게는 커다란 ‘우연의 선물’이라고 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온순하고 키우기 쉬운’ 기질의 아이들을 키우는 데는 주의할 점이 없을까요? 까다로운 기질의 아이들을 키우는 것보다는 훨씬 쉽겠지만 여기에도 나름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첫째, 아이가 학교나 집에서 선생님이나 부모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지는 않는지 정기적으로 살펴야 합니다. 먼저 말씀드린 제 클리닉의 아이처럼, 아이가 어려서 스스로 알아서 잘 하게 되면, 부모는 어련히 알아서 하겠거니 하며 점차 아이를 실제적으로 ‘방임’하게 되는 수가 있습니다. 학교에서 안 좋은 일을 당하게 되는 경우에도 자기주장을 잘 못하고 속으로 삭이게 되는 경우도 있겠고요. 부모가 바쁘더라도 아이에 대한 관심과 관찰은 적당한 정도로 필요합니다.
 
둘째로는 정기적으로 아이의 기분이나 학교생활을 물어봐주고, 아이의 대답을 기다려주는 배려가 필요합니다. 아이가 착하다고 해서 마음에 부정적인 감정이 생기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나라 부모들 중에는 아이가 ‘싫다’, ‘화난다’와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듣기 싫어하고 무턱대고 막는 부모님들이 있습니다. 이런 경우, 오히려 까다로운 기질의 아이들은 자기주장을 솔직하게 하거나 반항을 함으로써 ‘자신’을 지킬 수 있지만, 온순한 아이들은 스스로를 비난하며 ‘자신’을 부정하게 될 수 있습니다. ‘온순하고 키우기 쉬운’ 기질의 아이들은 소위 ‘착한 아이 콤플렉스’를 가지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셋째, 아이의 기질을 인정하고 기다려주는 여유가 필요합니다. 간혹 ‘온순한 기질’의 아이를 가진 부모들이 아이에게 자신감을 가지라고 야단치거나, 자기주장을 잘 하라고 잔소리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자신감’은 부모의 잔소리나 권유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지속적인 성공 경험과 자신의 감정 및 생각을 이해하고 수용해주는 부모가 있다면, 아이 내면의 자신감은 누가 뭐라 해도 튼튼하게 자라날 것입니다. 물론 ‘자기주장’을 적절히 잘 할 수 있도록 아이와 상의하고 조언하는 것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또래와 적절하게 타협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며, 너무 ‘자기주장’을 강조하는 것은 오히려 아이에게 강요로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아동의 기질이란 이처럼 장단점을 가지고 있어서, 무조건 좋은 기질, 무조건 나쁜 기질이란 없다고 보아야 하겠습니다. 오늘은 ‘온순하고 키우기 쉬운 기질’의 아이들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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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균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 <기질별 육아혁명>의 저자. 연세대 의대를 졸업한 뒤 연세의료원에서 정신과 전공의 과정과 소아정초년정신과 전임의 과정을 수료했다. 대전 건양대학교병원에서 전임강사 및 조교수 등을 역임하며 소아청소년 환자들을 만났고, 석사학위 논문 주제로 ‘아동의 기질’ 택하게 되면서 책을 집필하는 등 ‘기질’ 전문가를 자임하고 있다. 기질이 너무나도 다른 두 딸의 아버지로서, ‘기질에 적합한 양육’, ‘기질별 육아’를 줄기차게 부르짖고 있다. 2008년부터 소아청소년 상담클리닉에서 마음이 아픈 아이들과 엄마들을 만나고 있다.
이메일 : jinjin9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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