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울 홍릉수목원 옆 영휘원. 2 북서울 꿈의 숲 버드나무숲길. 3 홍릉수목원에도 막바지 가을을 즐기려는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 이미지를 누르시면 확대됩니다.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 이야기가 있는 숲공원

어디로 떠나도 스산한 바람이 옷깃을 파고드는 11월의 마지막 주. 화려했던 단풍과 단풍객 모두 떠나고 숲은 한결 맑고 깨끗해졌다. 찬 바람에 정갈하게 씻은, 일목요연한 맨몸으로 선 나무들 발치로 낙엽들만 두툼하게 쌓였다. 오래된 숲에는 오래 쌓인 푹신한 낙엽처럼 전해오는 이야기도 두툼하다. 서울 도심에 자리잡은 선인들 발자취 뚜렷한 공원의 낙엽길로 간다. 흥미로운 이야기가 숲처럼 우거진 도심 속 공원들이다.

북서울 꿈의 숲

아직 ‘드림랜드’라는 이름으로 기억하는 이가 많은 강북구 번동의 대규모 도심 공원이다. 20년간 운영돼온 놀이공원 드림랜드 터와 주변 녹지대를 묶어 2009년 선보인 녹지공원으로, 서울에서 네 번째로 큰 규모(66만여㎡)를 자랑한다. 낡고 쇠락한 놀이공원이 멋진 도심 숲공원으로 거듭난 것이다.

이 광활한 공원의 매력은 울창한 숲에서 뿜어져 나온다. 벽오산(135m)과 오패산(123m), 그리고 그 사이에 남동향으로 뻗은 골짜기(창녕위궁재사·잔디밭·광장·연못 등 주요 시설이 있는 곳) 지형을 아우른 모양새다. 사철 거닐어도 좋을 만한 숲길과 완만한 산길을 품은 울창한 숲이, 도심에 이런 곳이 있었나 싶게 매혹적으로 다가온다. 지난 주말 둘러본 북서울 꿈의 숲은, 단풍잎 져가는 산자락이 을씨년스러운 날씨 속에서도 마냥 썰렁해 보이지만 않았다. 색색의 낙엽들이, 이리저리 굽이치는 산길마다 수북이 쌓였고 그 길을 천천히 거닐며 속삭이는 연인들의 아름다운 뒷모습이 있어서다.

오패산 산길에서 만난 50대 부부(장위동)는 “가까운 곳에 살면서도 이렇게 멋진 숲길이 곁에 있는지 몰랐다”며 흐뭇해했다. 숲을 이루는 나무들은 대개 상수리나무·신갈나무 등 참나무류와 단풍나무·소나무들이다.

주변 주민들 중엔 이곳을 옹주릉으로 부르는 이가 많다. 순조와 순원왕후 사이에 태어난 복온공주(1818~1832)의 능이 있어 공주릉으로 불리던 곳인데, 옹주릉으로 잘못 알려진 탓이다. 옹주는 후궁의 딸, 공주는 왕비의 딸을 가리킨다. 13살 때 안동 김씨 김병주와 혼인한 복온공주는 15살 나이로 삶을 마감해 이곳에 묻힌 뒤 훗날 남편과 합장됐다가 용인으로 이장됐다. 오패산 밑 초록색 간이매점(스낵 바) 뒤 낙엽 쌓인 긴 나무계단길 위에 공주릉 터가 남아 있다. 복온공주가 혼례 때 입었던 옷(활옷)도 전해온다(국립고궁박물관).

북서울 꿈의 숲에 있는 창녕위궁재사는 복원공주와 부마 김병주의 능에 제를 올리던 재사이자 살림집이다. 이곳은 김병주의 손자이자, 구한말 영의정을 지낸 항일우국지사 김석진 선생이 일제에 항거해 자결한 곳이기도 하다.

북서울 꿈의 숲엔 자녀와 함께 즐길 만한 체험형 놀이공간이 많다. 공연장·갤러리·식당 등을 갖춘 꿈의숲아트센터가 있고, 현재 책과 놀이를 결합한 체험형 전시회 ‘책놀이터’ 프로그램(12월29일까지)이 진행중인 상상톡톡미술관 등 다양한 시설이 눈길을 끈다. 산길을 거닌 뒤 오패산 쪽에 우뚝 솟은 전망대 건물에 올라볼 만하다. 북한산·수락산 등 주변 산들과 서울시내 경관이 한눈에 들어온다.

산길 걷고 잔디밭에서 뒹굴며 노는 나들이객들에게 드림랜드 시절 추억을 물었다. 즐거운 기억보다는 ‘실망스럽던 추억’이 대부분. 두 딸과 함께 온 신소영(41·상계동)씨는 “7~8년 전까지 가끔 놀러왔었는데, 낡은 80년대식 놀이시설들뿐이어서 실망했던 기억이 난다”고 했다. “범퍼카도 회전목마도 너무 낡아 타기가 꺼려졌을 정도”였다. 한 40대 남성도 “10년 전 동물농장이 있다고 해서 와봤더니 개와 염소·닭 몇마리가 고작이어서 웃었던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 추억조차 씁쓸한 “낡고 후진 80년대식 놀이공원”이 “매주말 찾아와 놀고 싶은” 대규모 녹지공원으로 거듭난 셈이다.

이런 과정을 모두 지켜본 나무가 방문자센터 앞의 230년 된 느티나무다. 어린 시절 한때 창녕위궁재사에서 살기도 했다는 숲해설가 박영일(65)씨는 “예전엔 예식장 건물 쪽 도로변으로 아름드리 느티나무 6~7그루가 더 있었다”고 말했다. 방문자센터에 단체로 신청하면 숲해설가의 해설을 들으며 안내를 받을 수 있다.

홍릉수목원·영휘원

“단풍 시들어 떨어졌다고 숲에 볼 게 없다는 분들이 있어요. 이는 숲만 알지 나무는 모르고 하는 말입니다. 잎을 떨군 모습이야말로 나무의 본모습입니다. 왜 잎을 버리고 맨몸으로 서 있을까. 여기서 나무의 지혜를 배우고 느껴야 하지요.”

붉고 노란 단풍이 마지막 빛을 발하던 지난 주말 서울 동대문구 회기로 홍릉수목원(산림과학원 홍릉숲)에서 만난 숲해설가 정기섭(65)씨의 말씀이다. 해설가 말씀마따나 단풍은 시들어가도 나무들은 굳건히 서서 여전히 울창한 숲의 위용을 과시하고 있었다.

홍릉수목원은 국립산림과학원 부속 수목원으로,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수목원이자 서울 도심에 자리잡은 유일한 수목원이다. 본디 이 일대는 조선 말 왕가의 능역으로 지정됐던 곳이었다고 한다. 1895년 일본인들에 의해 시해된 명성황후는 먼저 양주 지역에 묻혔다가 2년 뒤 이곳으로 이장됐다. 이것이 홍릉으로, 홍릉수목원이란 이름이 여기서 유래했다. 그러나 1919년 고종 승하 뒤엔 다시 금곡으로 옮겨 고종과 합장됐다. 명성황후가 묻혀 있던 홍릉 터는 수목원 안 본관 오른쪽 산자락에 있다.

홍릉 이장 이듬해부터 일본인 식물학자 등은 이곳에 여러 지역의 나무를 옮겨다 심어놓고 연구를 시작했고, 1922년엔 본격적인 임업시험장을 개설하게 된다. 이것이 홍릉숲(수목원)의 시작이다. 홍릉숲은 44만㎡ 넓이의 산지와 평지에 2000여종에 이르는 목본과 초본 20만여본이 들어찬 국립산림과학원의 시험연구림이다.

본관과 연구동 뒷산에 여러 갈래의 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참나무류와 침엽수들 두루 우거진 청량한 산길을 거닐면서 색색으로 흩어진 낙엽들의 세계에 푹 빠져볼 수 있다. 평지 쪽에선 한창 붉게 물든 낙우송들의 자태와 함께 학술적으로 가치가 높은 나무들도 관찰할 수 있다. 1935년 이곳에서 처음 발견됐다는 문배나무(토종 산돌배나무의 변이종), 1926년 중국에서 옮겨다 심었다는 중국 특산종 두충나무 암수 두 그루 등이 그것이다. 숲해설가 정씨는 “지금 전국에서 자라고 있는 두충나무들은 모두 이 두 그루 나무에서 번식된 것”이라고 말했다.

홍릉숲 정문에서 5분 거리에 있는 영휘원에도 들러볼 만하다. 고종황제의 후궁인 순헌귀비 엄씨의 묘(영휘원)와 엄씨의 손자로 생후 9개월 만에 죽은 이진의 묘(숭인원)가 있는 곳이다.

홍릉숲은 토·일요일에만 개방한다. 숲해설가 2명이 상주하는데, 토·일 오전 10시30분과 오후 2시 두 차례 숲해설을 진행(3~11월)한다.

이밖에 낙엽길을 거닐어볼 만한 서울 도심 속 숲으로 잠실 올림픽공원, 성수동 서울숲, 양재시민의숲, 상암동 월드컵공원 등이 있다.

글·사진 이병학 기자


(한겨레신문 2013년 11월 2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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