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개월 된 딸아이(태명 당당이)를 키우고 있는 워킹맘입니다. 육아에 대한 의욕은 높지만, 안타깝게도 타고난 체력이 저질인지라 한계에 부딪히기 일쑤죠. 결국, '엄마가 편해져야 아이를 사랑할 여유가 생긴다'라는 철학으로 각 종 육아용품들을 기웃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신천지 육아용품 세계를 보고 있노라면 어느새 귀가 팔랑팔랑거립니다. '이거 살까? 말까?'
[이거 살까, 말까] ---- 6. 보틀워머
이제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되는지, 하루 종일 목이 칼칼하다. 퇴근 길, 약국에 들러 쌍화탕이나 한 병 사서 데워먹어야겠다. 아, 쌍화탕을 데울 생각하니, 주방 한 구석에서 자리만 차지하며 서서히 내 기억 속에서 사라져가던 애물단지가 생각이 난다. 그래, 이 녀석의 이름은 보틀워머였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보틀워머는 줏대 없이 사람들 말에만 의지해 물건을 사면 안된다는 교훈을 주었던 제품이다. 그 동안 <팔랑팔랑> 글들에 '젊은 엄마의 현명한 소비'라며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이번 보틀워머 사용기를 읽는다면, 나의 우둔함에 놀랄지도 모르겠다.^^
보틀워머는 단어 그대로 '병을 따뜻하게 데워주는 역할'을 한다. 기계 안에 일정량의 물을 넣고 버튼만 눌러주면, 차가운 음료가 5분안에 따뜻하게 데워진다. 보틀워머는 유축을 해둔 모유를 다시 데울 때도, 분유를 타기 위해 물을 데워야 할 때도 유용한 육아 필 /수/품이라고 블로거는 이야기 하고 있었다.
» 애물단지 - 보틀워머 '그래, 소중한 내 새끼가 먹을 건데 전자파 가득한 전자레인지에 데울 수는 없지.'
전자레인지처럼 전용 용기가 필요한 것도 아니다. PPUS 젖병, 유리 젖병 상관없이 사용이 가능하다. 굳이 젖병이 아니여도 된다. 모유 유축팩 채로도 넣을 수 있다. 이런 재간둥이를 어찌 모른 척 할 수 있겠는가. 내 마음도, 내 지갑도 활짝 열렸다. 실온, 냉장, 냉동 상태의 젖병과 이유식을 모두 데울 수 있는 아벤트 최신형 보틀워머가 우리집에 도착했다. 출산 후 산후조리원에 가서보니 나와 똑같은 보틀워머를 사용하고 있었다. 육아용품에는 관심도 없는 신랑에게 저것 보라며, '내가 산 것을 전문가들도 사용하고 있다'며 나의 선택을 자신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의 으스댐은 오래가지 못했다. 나에게 보틀워머는 수수께끼 그 자체였다. 적정한 온도를 맞추는 것이 갓 태어난 당당이 비위 맞추기보다 더 어려웠다. 대체 물을 어느 정도 넣고 몇 분을 데워야 아이가 먹기 적당한 온도가 되는 것인가. 아! 물론 제품 설명서에는 이런 사항들이 상세하게 쓰여 있다. 하지만 수학공식처럼 딱 들어맞지는 않았다.
내가 보틀워머를 사고자 했던 것은 밤중 수유 때문이었다. 유독 잠이 많았던 나는 조금이라도 더 많은 잠을 자기 위해 직수보다는 젖병을 물려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실상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냉장 상태의 모유를 꺼내 설명서 그대로 데웠지만, 아기에게 주기엔 너무 차가웠다. 가열 시간이 짧아서 그런가 싶어서 우는 아이를 달래며 다시 데웠다. 그러고 꺼내보면 또 너무 뜨거웠다. 아이는 ‘어서 먹을 것을 달라’며 숨 넘어 갈 듯 울기 시작한다. 우는 아이를 달래가며 찬물에 뜨거운 젖병을 식혔다. 아... 지금도 이때를 생각하면 눈물과 진땀이 동시에 흐른다.
이러기를 몇 날 며칠. 물의 양을 조절해보고, 가열 시간도 이리저리 바꿔봤지만 성공률이 높아지지 않았다. 품 안에서 아이는 울고 있는데, 수수께끼 같은 녀석을 붙들고 끙끙거릴 수는 없었다. 그냥 직접 수유를 하는 것이 빨랐다. 분유를 탈 때도 뜨거운 물을 보온병에 미리 담아두고 사용하는 것이 적정한 온도를 맞추기가 쉬웠다. 아... 결국 이런 거였나, 나에겐 스마트한 기계보다 이런 클래식한 방법이 더 맞는 것인가. 나름의 방법은 잘 찾았지만 왠지 허탈해졌다.
보틀워머가 해야 할 일이 없어졌다. 그래도 당당이가 이유식을 시작하면 이유식 데우는 용도로 사용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어처구니 없게도 당당이의 이유식 용기는 보틀워머에 들어가지도 않았다. 결국 ‘보틀워머’는 주방 한 구석에 쳐 박혀있다.
지금도 궁금하다. 대체 산후조리원을 비롯한 다른 이용자들은 어떻게 이 녀석의 비위를 맞추어서 알맞은 온도를 설정했을까. 나만의 조작 미숙으로 탓하기에는 뭔가 억울하다. 새삼 블로거들의 후기를 다시 찾아보니, 다들 나처럼 처음에는 실패하다가 자기만의 방법을 터득하는 듯 하다. 더 노력을 했었어야 했다고? 글쎄다. 이 녀석과 계속 씨름을 했다가는 심각한 산후 우울증이 왔을지도 모른다. 자지러지게 우는 아이를 안고 보틀워머로 온도를 맞추기 위해 전전긍긍하던 그 밤의 곤혹스러움이 아직까지 생생하다.
언젠가 주방 구석에서 이 녀석을 꺼내보았다. '쌍화탕'을 데우기 위해서였는데, 역시나 마음대로 조절되지 않았다. 너란 녀석, 초지일관 어렵구나. 결국, 나는 이 녀석을 인터넷 중고물품 거래사이트에 등록했다. 그리고 정말 놀랍게도 1년이 다 지나가도록 팔리지 않고 있다. 시세보다 싸게 내놓았지만 문의 댓글 조차 없다. 나 빼고는 모두 현명한 소비자인가보다.
“보틀워머야, 난 아직도 네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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