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야기 해줄때 책 내용 그대로 말해야 하나요?
[이야기 들려주기 2] 책말과 이야기말

이야기를 할 때, 책에 있는 언어를 써야 하나요, 아니면 내용에 큰 지장이 없는 한도에서 적당히 자신의 말로 해도 되는 것일까요?
이것은 한마디로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입니다. 왜냐면 ‘책에 써 있는 대로’라고 하시는 그 책이 과연 좋은 말로 쓰여 있는지, 또 질문자께서 말씀하신 ‘적당히’가 어느 정도 적당한 것인지가 문제이므로 그것에 따라 제 대답도 크게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해가 생길 소지가 있음을 각오하고 대답을 한다면, 저는 ‘이야기는 책에 써 있는 말대로 외워서 해 주십시오.’ 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렇다 함은 이야기에 있어서 그 알맹이, 즉 무엇이 일어났는지 뿐만 아니라, 어떤 말로 표현되었는지가 대단히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원숭이와 게>(일본전래동화)에서
“옛날 옛날, 게가 소금을 가지러 해변에 올라가자 모래 위에 어디서 나타난 건지 한 톨의 감씨가 있었는데……”
하는 것과
“있잖아, 옛날에∼ 게가∼ 바다에 가서∼ 해변을 두리번두리번 돌아보고 있었어∼. 그랬는데∼ 모래속에∼ 까∼맣고 똥그랗고∼ 쪼그만 게 있는 게 아니겠니∼ 그게 뭘까∼? 알겠니∼? 그건, 바로 감씨였어!”
처럼 말하는 것은 듣는 아이들에게 완전히 다른 느낌을 주게 됩니다. 같은 내용이라도 그것을 표현하는 말에 따라서 우리의 마음은 다른 곳으로 이동하게 됩니다.
한편, 하나의 예에 지나지 않은 <원숭이와 게>의 도입부를 생각해 보십시오. 어느 편이 우리를 이야기에 몰입시키게 될까요. 어느 편이 <원숭이와 게>를 말하는데 적합할까요. 첫 번째 예에서 게가 ‘소금을 가지러’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이 별로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은
채 진행됩니다만, 두 번째에서 저희의 마음은 다른 곳으로 이동하지 못하고 다만 무언가 찰칵거리는 슬라이드 필름을 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않습니까? 아시다시피, 이 이야기는 다음에 어미 게의 죽음, 새끼 게의 복수가 이어집니다만, 그것이 만약 두 번째 예처럼 진행된다면 대단히 진실함이 없어진다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이야기의 장점이라면 저희의 마음을 일상과 동떨어진 상상의 세계로 데려가주어 현실에서 볼 수 없는 것을 보여주고, 현실에서 경험할 수 없는 신기한 것을 경험하게 하고 그 결과로서 우리들의 마음을 보다 자유롭고 편안하게 해준다는 점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우리의 마음을 그런 곳으로 데려가주는 것인가 하면, 그것은 ‘말’인 것입니다.
“○○야, 코풀어야지.” 라든지 “봐봐, 밥풀이 떨어졌잖아.” 같은 일상적인 말 그대로라면 우리의 마음도 일상적 수준에 머물고 말 것입니다. 이야기의 말이라는 것은 이 수준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간결하고 군더더기가 없으며 일정한 리듬을 갖고 청자의 귀에 유쾌한 느낌을 줄 뿐만 아니라, 그 마음을 꽉 붙잡고 이야기가 요구하는 정신 활동에 걸맞는 상태를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질문자께서 특별한 준비를 하지 않고 편하게 나오는 말들이 과연 이 조건을 만족시키고 있을까요?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은 것이 사실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물론 책에 따라 좋고 나쁨은 있겠지만, 최소한 책의 문장이 더 정리가 돼 있을 것이므로 그렇게 정리가 잘된 말을 외우는 편이 더 좋은 결과를 낳을 것입니다.
또, 줄거리만을 알고 이야기하는 것과 이야기의 구석구석까지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이야기하는 것은 화자의 심리적 안정감이 다르게 나타납니다. 중간에서 적절한 표현을 찾느라 멈칫한다든지, 헷갈려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청자인 아이들에게도 그 다소 불안정한 새로운 말로 이야기되는 것보다 준비된 말로 반복되어 전달되는 편이 배우는 것이 많습니다.
한 번밖에 읽어주지 않았는데, 그림책 속의 표현을 아이들이 잘 외우고 있어서 꽤 시간이 지나고 나서도 적절한 장면에서 알맞은 말을 사용하는 경우를 본 적이 없으십니까. 혹은 그림책을 읽어줄 때 세세한 실수를 아이들에게 예리하게 지적당한 경험이 없으십니까. 귀로 듣는 말은 그만큼 머리에 남기 쉬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더더욱 준비가 안 된, 마구잡이식의 말은 피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여기서 특히 제가 질문자님께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방금 전의 <원숭이와 게>에서처럼 ‘그래서∼그렇거든∼’ 같은 식의 유치원 선생님 같은 말투를 절대 피해주셨으면 하는 것입니다. 10년 전쯤에 어떤 유치원에서 제가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했을 때, 듣고 계시던 선생
님께서 놀라면서 “∼였습니다, 라고 해도 아이들이 듣는군요!” 라고 하셨던 적이 있습니다. 저는 잠시 동안 무슨 말인가 싶었는데, 그것은 바로 제가 어미에 ‘거든, 란다’ 를 붙이지 않고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할아버지가 말했습니다.’처럼 말했던 것에 대한 놀라움이었던 것입니다.
저의 화법은 그 선생님이 보기에 꽤나 무뚝뚝하고 퉁명스럽게 보인 것이었겠지요. 그러나 아이들이 이야기를 듣는 것은 줄거리의 재미에 이끌려서이지, 선생님의 부드러운 말투 때문이 아닙니다. ‘거든, 란다’ 식의 부드러운 말투가 어울리는 얘기도 있습니다. 생활 동화풍의 별 것 아닌 아이의 생활을 스케치한 것, 혹은 장난감 인형 등을 주인공으로 하는 귀여운 이야기 같은 것들입니다. 그것은 그것대로 괜찮습니다. 그렇지만 극적인 이야기, 신화적인 이야기, 웅장한 이야기 등 소위 일상적인 수준에서 떨어져 있는 이야기에서는 사용되지 않아야 합니다.
예를 들면 <숲 속의 잠자는 공주>에서 그 13번째의 점술사가 무서운 저주를 내리는 장면을 생각해 봅시다.
“점쟁이 할머니가 있잖아, 애기 옆으로 와서, ‘공주는 15살이 되면 베틀에 찔려 죽게 되니라’ 하고 말했대. 그래서 그것만 말하고 있잖아, 휙 돌아서 나가 버린 거야.”
라는 말에,
“…… 여자는 누구에게도 인사하지 않고 곧바로 아기에게 다가가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공주는 15살이 되면 베틀에 찔려 죽게 되니라!’ 그리고 나서는 아무 얘기도 하지 않고 휙 등을 돌리고 궁전을 떠나갔습니다.”
에서 느껴지는 긴박감, 불길함이 있나요?
이야기의 내용에 상관없이 언제나 ‘잖아, 거든, ∼대’ 같은 식으로 말하는 것은 재료의 여하에 관계없이 전부 설탕을 뿌리는 것과 같습니다. 여러분의 이러한 말투는 아이들에게 말을 거는 듯한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이겠지요. 그러나 화자와 청자를 정말로 묶어주는 것은 이야기, 즉 누가 무엇을 했다는 사실이며 그 밖의 부수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진실성을 갖고 청자에게 전달되는 것은 청자의 마음을 이야기에 있어 민감한 정신 상태까지 끌고 올라가 주는 ‘말’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상을 통해서 여러분께서 줄거리만 기억하고 그때그때 대충 말하는 것이 아니라, 준비된 아름다운 말들로 안정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이 글은 일본 기독교 보육 연맹에서 발행한 잡지 《기독교 보육》에 1974년 4월부터 1975년 3월까지 연재된 것입니다.
*어린이도서연구회 회보 2006년 8월호, 9월호, 10월호에 연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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