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부터 14개월에 들어선 하윤이에게 '희한한' 버릇 하나가 생겼다.

실은, 희한하다기보다는 '진땀 빠지는' 고역에 가까운 일이다.

 

정말이지 갑자기, 하윤이는 뜬금없이 자다가 일어나서는 엉엉 운다.

한참 단잠에 빠져든 새벽 2시쯤에 깨어나 갑자기 우는 것이다.  

  

잠결에 울음소리를 들었을 때, 처음엔 정말 겁을 잔뜩 먹었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어디가 아픈 걸까?'였다.  

 

그런데 사람이 어쩜 이렇게 얄팍한지.   

마음 같아선 당장 거실로 달려가 체온계를 들고 와야 하는데, 

마음은 이미 거실에 가 있는데, 몸이 영 움직이지를 않는 거다. 

 

'설마, 갑자기 아프겠어.'라는 이상하리만치 관대한 생각과 함께,

'아, 너무 졸린데.... 갑자기 왜 이러지...' 하는 원망 아닌 원망까지.

(잠 앞에 장사 없나보다.)

 

딱풀이라도 붙여 놓은 듯 잘 떠지지 않는 눈을 애써 뜨고는

모래주머니라도 달린 듯 꾸역꾸역 발걸음을 옮겨 거실에서 체온계를 가져왔다.

 

다행스럽게도 체온은 정상.

 

체온을 재려고 간접조명을 켜고 아가 귀에 체온계를 꽂기까지,

그 짧은 시간에 아이가 얼마나 울어제끼고 나는 아이의 고집을 꺾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는 생략.

 

잠깐 체온계에 관심을 보이는 듯하더니, 아이는 다시 칭얼칭얼 운다.

 

그제야 기저귀를 살펴보니 파란줄이 짙고,

어디 목욕탕에라도 들어갔다 온 것처럼 기저귀가 퉁퉁 불어 있다.

 

'아, 기저귀가 찝찝해서 그랬나.'

 

손을 쭈-욱 뻗어 새 기저귀를 집어들고는 아이의 바지를 엉덩이 아래로 내린다.

그마저 싫다는 듯 아이가 계속 우는 동안 나는 기계적으로 기저귀를 간다.

 

묵직한 기저귀는 방 구석으로 휙 던져 놓고,

새로운 기저귀를 채우면 이제 낫지 않을까 숨 내쉬려는데, 여전히 아이는 운다.

 

그다음으로 드는 생각은 '배가 고픈가.'

 

순간 내 머릿속은 이런저런 생각으로 복잡해졌다.

- 밤중수유를 끊은 지가 언제인데.. 

- 돌이 지나고 다시 밤중수유를 하기도 하나?

- 생우유를 줄까? (근데 너무 찰 텐데)

- 그렇다고 분유를 주려면, 젖병에다가 분유를 풀고, 정수와 온수를 맞추고.. (아, 귀찮은데..)

- 귀찮은데.. 귀찮으면 나쁜 엄마 같은데.. ㅠ 근데 졸린데.. 

 

그렇다, 나의 솔직한 심경은 한밤중 일어나는 그 모든 상황이 '귀찮고 피곤하다'는 거였다.

 

아이가 아픈 걸까, 기저귀 때문일까, 배가 고픈 걸까, 등등의 걱정 어린 생각 너머엔

'아, 자다가 갑자기 왜 이럴까. ㅠㅠ 피곤한데..' 하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죄책감이 들었다.

엄마로서 지혜롭지 않은 마음인 것만 같아, 그저 잠에 취한 탓이라고 믿고 싶었다. 

'잠이 뭐 별거라고.' 싶다가도, 

그날 밤 어김없이 하윤이가 울기 시작하면 '얘가 정말....' 울컥 화가 치밀어 올랐다.

 

듣고도 모르는 건지, 아니면 정말 죽은 듯 잠을 자는 건지..

침대 위에서 눈을 꾹 감고 있는 남편을 깨웠다.  

 

혼자 이 상황에서 똑 떨어져 나가 있는 것 같은 남편의 자는 모습을 보자니, 얄미웠다.

괜히 억울하기도 했다. 나는 하윤이를 안고 남편을 툭툭 쳤다.

 

나   "하윤이 자꾸 울어."

남편 "...."

나   "어떡하지?"

남편 "아...."

나    "체온도, 다 정상인데. 배고픈 것 같아."

남편 "... 몇 신데."

나    "2시 넘었어. 분유 타 줄까?"

남편 "아. 하지마. 새벽수유 끊은 지가 언젠데."

나    (누가 그걸 모르냐 -_-)

       "근데 배고픈 거 말곤 없는 거 같아. 낮에 많이 안 먹었을지도 모르잖아."

남편  "아. 하지마."

나     "배가 좀 홀쭉한데.. 안 되겠어, 내가 분유 타오고 있을 테니까 옆에서 좀 봐."

남편  "...."

 

말은 않지만, 나와 남편은 안다. 

지금 뭔가 서로 이유 없는 화를 꾹 참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서 더 말이 오가면 백퍼센트 싸.움.

 

내가 거실로 나오자, 남편은 우는 하윤이를 안고 방문을 살짝 닫았다.

라디오를 켰는지 음악 소리가 들려오고,

갑자기 아빠 품에 안겨 발악하듯 자지러지게 울던 하윤이는 잠시 뒤 울음을 멈췄다.

 

휴.

젖병에 물을 붓고는, 분유를 넣을까 말까 넣을까 말까 중이던 나는 분유통을 닫는다.

(버려지는 분유만큼 아까운 것은 없기에.. 한 스푼이라도 소중하게..)

 

화장실에 가서 소변을 본 뒤,

울음 소리가 더는 들리지 않는 걸 확인하고는 방에 조심스레 들어간다.

남편과 하윤이가 마주 보고 잠들어 있다.

 

울다 잠든 하윤이의 쌕쌕거리는 숨소리가, 안쓰러우면서도 참 고요하게 들린다.

푹 잠이 든 숨소리다.

안도감에 젖은 나는 한숨조차 조용히 내쉬고, 침대에 올라가 잠이 든다.

 

,....이러한 새벽 2시의 패턴은 일주일 넘게 반복되었다.

아이가 그때 왜 그렇게 자다 깨서 갑자기 울었는지, 아직도 이유는 잘 모르겠다.

나는 '배가 고팠던 거야'라고 계속 주장하고 있고,

남편은 '그냥 뭐, 꿈을 꾼 게 아닐까' 하며 대수롭지 않았다는 듯 말한다.

 

다행히도 이야기를 남기는 요즘은 조금 덜하다.

빨리 자는 날은 11시, 조금 늦게 자는 날은 12시 정도에 일어나 엉엉 운다.

다행히 이 시간은 우리 부부가 아직 잠들기 전이기 때문에

교대로 방에 들어가 하윤이를 재우고 다시 나오거나 아니면 그 곁에서 같이 자곤 한다.

 

열흘 사이, 지옥의 한가운데를 조금 벗어난 기분이다.

정말 힘들었다.

그리고.... 무서웠다.

아이의 이유 모를 울음도, 캄캄한 어둠도, 아이와 나만 있는 것 같은 절박함도.

근데 이 이야기를 듣더니 남편은 역시나 특유의 무심한 투로 말을 한다.

 

남편  "뭐가 하윤이랑 둘만 있어. 다들 새벽에 그러고 있더만."

나     "다들이라니?"

남편  "잠깐 거실에 나가 있는 동안 내가 하윤이 재울 때 말야.

         윗집인지 아랫집인지 옆집인지, 애가 엉엉 울더라고. 꼭 하윤이처럼.

         근데 울음소리가 나니까 다다다다 어른이 막 방으로 뛰어와.

         그 울음소리랑 발소리를 듣는데, 아, 다들 이렇구나.. 싶더라고.

         하윤이가 유난스러운 게 아니라, 애들이 새벽에 깨서 잘 우나보다 싶더라고.

         그래서 그냥 하윤이를 잘 재울 수 있었어."

나      "...잘난척은."

 

남편의 말에 심드렁하게 콧방귀를 뀌었지만, 실은 조금 놀랍기도 했다.

그 새벽에, 다른 집도, 그랬구나.

얼굴도 잘 모르는 이웃과의 연대감 같은 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근데 내 귀엔 하윤이 울음소리 말곤 들리는 게 없던데, 저 사람은 좀 마음의 여유가 있었나.)

 

어쨌든 우리 부부의 위태로운 새벽 2시는 지나갔고(지나간.. 거겠지?),

육아의 의외성을 깨닫게 해 준 하나의 고비를 나름 잘 넘었다고 서로 자만하는 중이다.

 

더불어 위기 앞에 생각보다 의연한 남편의 의외성마저 (그를 안 지 5년 만에) 발견한 나는,

이제 종종 이런 고비가 찾아올 때면 남편에게 바통을 넘길까 한다.

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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