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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출장 간 집에서 아들하고 티격태격 했다. 
녀석이 제가 해야 할 일이 있는데도 도무지 방에 틀어박혀 레고만 주무르고 있는 것이다.
딸들은 어려도 내가 얘기하면 듣는 시늉이라도 하는데, 아들은 언제나 제 사정만 제일 중요하고 내 잔소리도 좀처럼 수굿하게 듣는 법이 없다. 그러니 늘 아들하고는 쉽게 삐걱거린다.

한참 서로 감정이 상해서 격한 말을 주고받고 있는 와중에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일곱 살 둘째 딸이 재빨리 전화를 받았다. 이어서 수화기를 건네받았더니 남편은 대뜸 ‘아들한테 너무 소리 지르지 마’ 이러는 거다. 딸하고 전화로 이야기하는 중간에 내가 필규에게 화 내는 소리를 들은 모양이다. 자초지종도 모르면서 소리를 지르지 말라니 순간 어이가 없었다. ‘화가 나더라도 너무 몰아세우지 말고 잘 달래서 얘기해’ 한다. 남편이 말하는 뜻을 모르는 게 아니다. 아들은 특히나 말로 야단치고 잔소리 하는게 소용없다는 걸 잘 알면서도,  감정이 상하면 잘 통제가 되지 않는다. 제 잘못은 잘 인정하지 않으면서 나랑 싸울 땐 치사하게 내가 실수한 것도 조목조목 따지고 드는 아들의 태도는 더 얄밉다. 그래도 남편은 항상 내가 너무 다그치니까 내게만 아들이 더 삐딱하게 구는 거라고 말한다. 자기한테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거다. 아니나 다를까 아들과 전화를 바꾼 남편이 ‘아빠는 네 편이야’ 하는 소리가 내게까지 들려온다. 아들이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다음 날 집에 돌아온 남편은 아들이 좋아하는 달달한 과자를 잔뜩 들고 있었다. 아마 아들이 나 몰래 전화로 부탁한 모양이다. 과자를 본 아들이 환호성을 지른다. ‘역시 아빠는 최고야’ 신이 난 얼굴이다.

남편은 아들에게 늘 관대하다. 화도 잘 내고 소리도 잘 지르는 나에 비해 남편은 좀처럼 목소리가 높아지는 법이 없는 사람이다. 내가 아들과 싸우면 아들을 가만히 불러 낮은 목소리로 타이르면서 엄마의 마음을 설명해 주는 것은 늘 남편 몫이다. 내겐 사달라고 졸라도 잘 안 통하는 물건이나 간식도 남편은 잘 들어준다. 그러니 늘 아들과 아빠 사이는 훈풍이 분다.

가끔은 좀 억울할 때도 있고 서운할 때도 있지만 세 아이 키우면서 남편이 나와 다른 사람이라는 것이 좋을 때가 더 많다. 똑같이 화내고, 똑 같이 소리 지르는 사람이었다면 우리 집은 정말 매일 난리가 났을 것이다. 한 사람이 화내도 한 사람은 같이 휩쓸리지 않고 아이들을 보듬어주니 내가 아이들과 한바탕 악다구니를 하며 폭발을 해도 갈등과 감정은 금방 진정이 된다. 내가 늘 악역만 맡는 것 같지만 그만큼 아이들과 가깝게 지내면서 좋은 일, 기쁜 순간도 더 많이 누리고 있으니 불평할 일은 아니다. 동성이기에 본능적으로 서로를 훨씬 더 잘 이해하는 나와 딸들 사이에서 저 혼자 남자인 아들 역시 평소에 억울한 일이 많을 것이다. 그럴 때 같은 남자인 아빠와 통하고 아빠에게서 위로받을 수 있다는 건 정말 다행스런 일이다. 

그렇게 때로 두 남자는 세 여자들 사이에서 동지가 되고 한 편이 되어서 힘을 얻고 안심이 된다. 아빠와 아들 사이는 이래서 중요하다. 
얼마 전부터 자전거를 저 혼자 타게 된 아들을 위해 남편도 결혼 10년 만에 자전거를 샀다. 주말엔 차에 자전거를 싣고 이곳 저곳을 다니며 아들과 단 둘이 시간을 더 많이 보내겠단다. 도무지 운동엔 관심이 없던 남편이 쑥쑥 크는 아들 덕에 달라지고 있다.
아빠와 아들 사이.... 팍팍 더 밀어줘야겠다.

(*한겨레신문 2013년 11월 5일자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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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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