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림책이 있는데 이야기를 해줘야할까요?
[이야기 들려주기 1] 그림책과 이야기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 좋은 것이라고들 합니다. 저도 한번 해보고 싶습니다만, 이야기를 찾거나 고르거나 외우는 것이 쉽지 않아 항상 그림책을 읽어주기만 합니다. 좋은 그림책을 고르고 읽어준다면 따로 이야기를 해주지 않아도 되지 않나요?
확실히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게다가 그림책은 대부분 ‘이야기(스토리)’를 기본으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그림책을 읽어줌으로서 이야기에 대한 아이들의 요구는 상당히 해소가 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그림책에는 그림책 나름대로의 작용이 있고 이야기에는 나름대로의 또 다른 작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양자는 중복되는 부분도 있으나 한쪽만으로 해결될 수 없는 부분도 분명 존재합니다. 그렇다면 이야기로만 가능한 부분은 무엇인가, 하는 부분입니다만 이것에 관해 생각해보기 위해서 이야기들 중 그림책이 될 수 없는 것, 혹은 되기 힘든 것이 있는가 하는 점에 대해 먼저 생각해봅시다. 현재로는 전래동화를 시작으로 신화·시·수수께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것들이 그림책으로 출판되는 시대이므로 그림책이 될 수 없는 것은 없다라고 말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아이들이 좋아하는 몇몇 전래 동화 중에는 그런 것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예를 들면 말(소리)의 재미가 중시된 이야기 같은 경우는 그림책으로 표현하기가 힘듭니다. 또 이야기에는 말의 울림, 말의 리듬이 귀에 전해지는 즐거움이 그 본질이 되는 것들이 있는데 이런 종류의 것들은 특히 그림책을 보기에 아직 어린 아이들에게 중요하므로, 그림책에만 의존하여 귀가 반응하는 기회를 아이들에게 제공하지 않는 것도 문제가 있겠지요.
또, 그림책으로 표현이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전달되기 힘든 것, 혹은 아이들을 위해 오히려 그림 없이 이야기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들도 있습니다. 전래동화 중에도 많은 것들이 이에 해당한다고 보여지는데, 예를 들면 세상에 없는 생물, 세상에 없는 장소 등이 나오는 경우에 웬만큼 탁월한 작가가 아니고서는 오히려 청자의 상상력을 위축시켜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귀로 듣고 있으면 얼마든지 자신의 상상력을 펼쳐 나름대로의 이미지를 만들 수 있는 것이 처음부터 만들어진 그림으로 제시가 되면, 더 이상 넓혀지지도 깊어지지도 못한 채 재미가 반감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특히 도깨비나, 마귀할멈, 트롤 같은 것은 아이들이 스스로 어떤 이미지를 떠올리고 그것에 대해 공포심을 갖는 것이 이야기에 생명력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무섭지도 않고, 나아가 저속하게 만화적 이미지로 그려진 그림책을 통해 그 이야기가 소개되었다면 그 생명은 끝나버립니다.
그렇다면 이번엔 아이들의 입장에서 그림책을 보는 것과 이야기를 듣는 것은 어떻게 다른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똑같이 이야기(스토리)를 받아들이고 있다 해도 그림책을 보는 것과 듣는 것에 대한 아이들의 심리상태는 같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림이 있으면 아이들의 주의력은 그곳에 집중되게 됩니다. 이야기 자체를 구석구석 알지는 못한다고 해도 어쨌든 그림을 보면서 무엇이 일어났는가를 인식하고 그림으로부터 어떤 정서를 느낄 수가 있게 됩니다. 그러나 이야기는 언어만으로 진행되는 것이므로 아이들은 그말이 전해지는 순간순간에 주의를 집중해서 그 말을 이해하고 자신의 상상력을 발휘해 이야기를 그림으로 바꿔나가는 작업을 해야만 합니다.
또, 그림책에서는 1페이지부터 5페이지까지 잘 이해하지 못했는데 6페이지의 그림은 흥미로웠다 하는 등의 경우가 있을 수 있겠지만, 이야기에서는 스토리의 논리적 발전을 일체 제외하고 한 부분만을 즐긴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야기를 하는 것은 그 자체로 아이들에게 논리적인 스토리 전개, 일관된 흐름을 받아들여 주의를 흐트러트리지 않고 쫓아가도록 합니다.
즉, 이야기는 상상력을 발휘하게 하는 점, 주의를 집중하고 지속시켜 이야기의 전개를 따르게 하는 점에서 어린아이들에게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물론 그림책을 읽어주는 것이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은 아닙니다만, 이야기를 하는 것이 시각의 보조가 없으므로 아이들에게 더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귀를 기울일 것을 요구하게 됩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그림책에서 살리기 힘든 종류의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전해주기 위해서라도, 그림책으로는 충분하지 못한 아이들의 정신 작용을 위해서라도 단지 그림책만이 아니라 이야기도 해주는 것이 낫다는 것을 이해하실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덧붙이자면 그림책을 읽어줄 때와, 이야기를 할 때의 화자와 아이들의 거리에 관한 내용이 있습니다. 그림책이나 책을 읽어줄 때는 아무리 잘 읽는다고 해도 책이 화자와 아이들 사이에 병풍처럼 서있게 됩니다. 그러나 이야기를 할 때는 아이들의 눈은 똑바로 화자를 응시하게 되며 화자의 눈도 아이들의 시선을 받아주게 됩니다.
이런 식으로 좋은 이야기가 생동감 있게 화자로부터 넘쳐 나듯이 흘러나오고, 청자가 그것을 곧바로 받아들였을 때 양자 사이에는 대단히 밀도 높은 감정의 교류가 일어나게 되어 쌍방에게 대단히 강한 인상을 주게 됩니다.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해주기 시작한 사람이 가끔 ‘중독’ 되는 것은 이 매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화자와 청자가 이어지는 것 같은 독특한 분위기, 감동에 이끌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체험으로밖에는 알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해보지 않고는 잘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깊은 만족감은 여러분 본인에게도 아이들에게도 귀중한 경험이 될 것이라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이상 말씀 드린 대로 저는 아이들에게 그림책도 이야기도 모두 활용되기를 바랍니다. 그것도 단계적으로 그림책이 먼저, 이야기가 나중이 아니라, 각각의 연령대에 어울리는 그림책과 이야기가 동등하게 활용되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그림책만을 이용했던 질문자께서도 부디 이 기회를 통해 이야기의 즐거움을 알아주길 바라는 바 입니다.
*이 글은 일본 기독교 보육 연맹에서 발행한 잡지 《기독교 보육》에 1974년 4월부터 1975년 3월까지 연재된 것입니다.
*어린이도서연구회 회보 2006년 8월호, 9월호, 10월호에 연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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