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1048849638.jpg

 

지난 밤, 아이를 재우고 늦은 저녁을 먹으면서 한참 생각에 빠졌습니다.

 

식탁위에 올려진 것 중 내가 직접 요리한 것이라고는 한 가지도 없더군요.

시어머니의 김치, 엄마의 파김치와 깍두기와 나물.

시어머니 친구가 보내주신 사골과 견과가 잔뜩들어간 쥐포볶음과 장조림.

그 옆에는 성당 교우분이 주신 삶은 땅콩과 신선한 대추가 있고,

근처 동네에 사는 지인에게서 받아온 싱싱한 열무를

역시 지난번에 엄마가 만들어 두고간 쌈장에 맛있게 찍어 먹었습니다.

 

열심히 풀을 메고 다듬고 무치고 볶았을 그들을 생각하니

이렇게 받기만 해도 되나 가슴이 찡한 순간이었습니다.

하긴, 이 세상에 제 스스로 해낸 것이 뭐가 있을까요.

모두 하늘이, 햇빛과 바람과 비와 땅과 당신들이 일궈주신 것들이지요.

 

누군가에게 빚을 지고 다른 이에게 베풀고.


저 혼자 잘난 줄 착각하던 저는 이제야 조금씩 알아갑니다.

세상의 커다란 보살핌으로 지금까지 살아왔다는 것을.

 

젖꼭지가 너덜너덜 해지고

열이 오르는 아이를 보며 정신이 혼미해지고

입을 쩍쩍 벌리며 이유식을 받아먹는 아이를 보며

내가 내민 손가락에 제 손가락을 갖다대는 아이를 보며

이제야 알아갑니다.

이 아이를 위해 내가 태어났다는 것을.

 

그러니 얼마나 다행인지요.

 

엄마가 되지 않았더라면 이 아름답고 고귀하고 감사한 삶의 원리를

절대 알 수 없었을 테니까요.

쌍용차나 밀양 송전탑 같은 사태에 대해

가슴으로 대화하는 법을 몰랐을 테니까요.

그래서, 하루하루 올바르게 가치있게 살아야 한다

다짐할 일도 없었을 테니까요.

 

오늘은 아이의 첫 생일을 일주일 앞두고

부모님께 드릴 감사 편지를 쓰는 걸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다들 명절 잘 보내셨나요?

밀려있던 글들을 한참 시간을 들여가며 읽었습니다.

 

이사에 명절에 어느덧 저희식구가 서울을 떠난 지도 한 달이 되었네요.

동물 식구들 이야기, 돌이 다 된 딸아이 이야기,

누렇게 변해가는 가을들판도 보여드리고 싶은데

마음만 바쁘고 속절없이 시간은 잘도 흘러만 갑니다.

 

어쨌든 아이의 첫 생일을 앞두고

이래저래 특별한 한 주가 될 것 같아요^^

 

모두들 기분 좋게 한주 시작하고 계시길 바라며!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첨부
안정숙
2012년 첫째 아이 임신, 출산과 함께 경력단절녀-프리랜서-계약직 워킹맘-전업주부라는 다양한 정체성을 경험 중이다. 남편과 1인 출판사를 꾸리고 서울을 떠나 화순에 거주했던 2년 간 한겨레 베이비트리에 ‘화순댁의 산골마을 육아 일기’를 연재했다. ‘아이가 자란다 어른도 자란다’를 통해 아이와 부모가 함께 성장하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2017년 겨울, 세 아이 엄마가 된다. 저서로는 <호주와 나 때때로 남편>이 있다.
이메일 : elisabethahn@naver.com      
블로그 : http://blog.naver.com/elisabethahn
홈페이지 : http://plug.hani.co.kr/heroajs81

최신글

엮인글 :
http://babytree.hani.co.kr/131701/77a/trackback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수
1628 [책읽는부모] [나의 운명 사용 설명서] 후기 - 팔자타령 이젠 못하죠^^ [7] 난엄마다 2013-10-10 6224
1627 [자유글] 일본 학교운동회에 울려퍼진 강남스타일! imagefile [4] 윤영희 2013-10-10 9198
1626 [자유글] 유행어..? [6] 분홍구름 2013-10-09 4553
1625 [책읽는부모] 정유정의 소설 <28> 박진감 넘치네 [10] 양선아 2013-10-08 4862
1624 [책읽는부모] 돈 밝히는 아이 아닌 돈에 밝은 아이로 키우기 imagefile [13] 박상민 2013-10-07 7464
» [자유글] 첫 아이 첫 돌을 앞두고 부모님을, 당신들을 떠올립니다. imagefile [8] 안정숙 2013-10-07 4084
1622 [책읽는부모] [어흥어흥 어름치야] 아이 책 후기 imagefile 난엄마다 2013-10-07 4288
1621 [자유글] '넌 특별하단다' 관람 후기 - 첫째와의 특별한 추억만들기 imagefile [2] 난엄마다 2013-10-05 4203
1620 [책읽는부모] [그림책 후기] <와글와글가족!> 루가맘 2013-10-04 4492
1619 [책읽는부모] 그림책<달이네 추석맞이> 후기 입니다.^^ imagefile fjrql 2013-10-03 7906
1618 [책읽는부모] [오늘 만드는 내일의 학교]후기 - 학부모로 살았던 반 년 [5] 난엄마다 2013-10-02 6955
1617 [직장맘] 어느 직장맘의 이중생활 imagefile [8] 해피고럭키 2013-10-01 10425
1616 [자유글] 꼬마 수다쟁이에게 충고란...? [10] 분홍구름 2013-09-30 4490
1615 [가족]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의 유혹 imagefile [1] 박상민 2013-09-30 12152
1614 [가족] 반전의 묘미~ 여섯 살 아이와의 대화 imagefile [2] 꿈꾸는식물 2013-09-30 6112
1613 [가족] 35년째 지긋지긋하단다…딸아 넌 그렇게 살지 마라 image 베이비트리 2013-09-30 6335
1612 [자유글] 40이 다가오는 연말 [11] 푸르메 2013-09-27 4535
1611 섞으면 예뻐져요 베이비트리 2013-09-26 4199
1610 [자유글] 추석풍경 imagefile [10] 분홍구름 2013-09-25 4881
1609 [가족] 우리집 명절 풍경 imagefile [10] 박상민 2013-09-23 11937

최신댓글

Q.아기기 눈을깜박여요

안녕하세요아기눈으로인해 상담남깁니다20일후면 8개월이 되는 아기입니다점점 나아지겠지 하고 있었는데 8개월인 지금까...

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