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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표 영어 교육’ 실패와 성공 사이

양선아 2013. 09. 24
조회수 19749 추천수 0

영어교육3.jpg » 학습을 목적으로 한 조기 영어 교육은 득보다 실이 많다. 자칫 영어에 대한 흥미를 잃게 만들 수 있다. 사진은 한 아이가 알파벳 단추를 누르면 발음이 나오는 책을 눌러보며 신기해 하고 있는 모습이다.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도원아~ 이게 영어로 뭐라고?”
“…”
“도원아, 따라해봐~ 애플(apple)”
“애플”
“아이고~ 우리 도원이 잘 하네. 사과는 애플이라고 해. 우리 도원이 맛있는 애플 먹을까?”


도원이 할머니(60)는 4살 도원이에게 영어 단어 하나라도 가르치기 위해 애를 쓴다. 영어 교육용 디브이디(DVD)도 날마다 보여준다. 도원이 엄마 최아무개(37·서울 노원구)씨는 그런 친정 엄마를 보면 난감하다. 영어를 일찍 가르칠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데 “어릴 때부터 영어에 많이 노출시켜야 한다”는 친정 엄마의 고집을 꺾을 수 없어서다. 과연 도원이 할머니는 도원이의 영어 실력을 쑥쑥 높이고 있는 것일까?

영어 교육 전문가들은 도원이 할머니 사례가 전형적으로 잘못된 교육 유형 중 하나라고 지적한다. 영유아 시기에는 서로 다른 두 언어를 구분하지 못하고 전체 이미지로서 기억한다. 도원이 할머니처럼 한글 문장 속에 영어를 섞어 쓰면 오히려 아이들이 어느 언어도 제대로 배우지 못한다는 것이다.

 

영어교육업체 와이비엠(YBM)의 김미연 아르앤디(R&D) 팀장은 “아주 짧고 쉬운 문장이라도 제대로 된 영어 문장으로 말해줘야 한다. 또 모국어를 말하는 시간과 영어를 말하는 시간을 확실히 구분해서 접근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김 팀장은 이런 모든 것도 아이의 흥미와 언어적 발달 상황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단어를 알려주고 테스트하는 식의 교육 방법이나 아이의 흥미를 무시한 일방적인 영어 노출은 오히려 아이의 흥미를 잃어버리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영어 노출에만 집착한 나머지 아이에게 티브이나 스마트폰과 같이 시각적 자극이 강한 매체에 하루 3시간 이상 노출하는 것 또한 좋지 않다. 김 팀장은 “나이가 어릴수록 청각적 자극에 더 민감하다. 영상 화면보다는 시디(CD)나 테이프 등을 활용하라”고 조언했다. 라임(음조가 비슷한 글자), 챈트(연이어 외치는 구호), 영어 동요 등을 들려주면서 엄마가 아이와 함께 놀이로서 즐기면 영어 교육에 효과적이다. 신기한 멜로디를 들려주는 차원의 접근이 좋다는 얘기다. 

 

사실 많은 교육 전문가들은 영유아 시기의 영어 교육에 부정적인 편이다.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다는 것이다. 이정희 한국루돌프슈타이너인지학연구센터장은 “영유아 시기에는 모국어 습득이 더 중요하다. 모국어의 언어 구조를 잘 습득해야 아이들이 내적 안정감을 얻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언어는 사고력의 바탕이다. 언어는 또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사고 구조를 반영한다. 언어를 통해 아이들은 생각하는 법을 배우고, 다른 사람과의 소통을 통해 사고를 확장할 수 있다. 이 센터장은 “영어에 시간을 뺏기면 그만큼 모국어의 언어 구조를 습득할 시간이 줄어든다. 당연히 아이의 내적 안정감이나 사고력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치는데, 부모들이 당장 영어 몇 마디 하는 것에 욕심을 낸다”고 걱정했다. 영어는 초등학교 시기부터 시작해도 늦지 않다는 것이다. 

영어를 잘 하기 위해서도 모국어 기반이 중요하다고 보는 전문가도 있다. 두뇌발달 전문가인 김영훈 가톨릭대 의정부성모병원장은 “아이의 뇌는 언어를 배우면서 언어에 맞게 뇌의 신경회로를 만든다. 또 영어보다 모국어를 사용하면 뇌의 시각적 영역이 더 활성화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뇌 발달을 고려하면, 언어적으로 좋은 환경에 조기 노출된 아이들은 우리말 뿐 아니라 영어도 잘 배울 수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많은 영어 교사들은 우리말 능력이 뛰어난 아이들이 영어도 잘 하는 현상을 자주 목격한다. 김승현 사교육걱정없는 세상 정책실장(숭실고 영어교사)은 “어렸을 때 영어를 남보다 일찍 시작했더라도 부모에게 이끌려 수동적으로 영어를 배운 경우, 학습태도나 습관 등을 망친 경우를 많이 봤다. 영어에 일찍 노출됐다고 영어를 잘 하는 것이 아니라 전반적인 학습 역량과 태도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 중·고교 영어 교사들의 공통된 의견”이라고 전했다.

 

조기 영어교육의 성패를 결정하는 것은 흥미라는 게 대체적 견해다. 노출의 양과 시기도 중요하지만, 그것도 흥미가 전제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모국어 습득에 부정적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 흥미를 자극하는 방법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유아교육기관인 하이스코프의 차상진 트레이너는 한글로 된 동요를 불러주고 그것을 영어 버전으로 들려주거나, 아이가 한글로 된 책 중 가장 관심있는 책을 충분히 보여준 뒤 똑같은 책을 영어 버전으로 보여주는 방법을 권한다. 전 조작기(피아제의 인지발달 단계로 2~6살이 해당)의 아이들은 아직 규칙을 분석하거나 모국어와 영어를 비교하지 않아 영어를 한글과 함께 배우더라도 두 언어 표현 양식이 서로 다른 것에 혼란스러워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글로 충분히 내용을 이해한 아이들에게 영어 버전으로 읽어주면 영어에 대한 거부감도 줄일 수 있다.

 

영어 도서관이나 영어 관련 도서를 파는 서점, 영어 마을 등에 들러 영어 책이나 외국인을 접하도록 해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김미연 팀장은 “아이가 만약 공룡을 좋아한다면 영어로 된 공룡책을 사주고 아이와 함께 읽어라. 그만큼 아이의 흥미를 잘 아는 것이 중요하다. 또 외국인을 만났을 때 부모가 영어를 사용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당당하게 말하는 태도를 보이면 그것 또한 아이에게 좋은 본보기가 된다. 엄마가 영어에 대한 자신감 있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쑥쑥닷컴’ ‘새미네 영어학교’ ‘잠수네 커가는 아이들’ ‘애플리스 솔빛이네엄마표 영어연수’ 등 ‘엄마표 영어’를 지향하는 온라인 사이트 자료들을 활용해보는 것도 방법이다. 아이의 수준과 성향, 흥미 등을 고려하되, 사이트에 올라온 다른 아이들의 영어 수준과 내 아이를 비교해서 조바심을 내는 것은 금물이다. 언어 교육은 장기적인 목표를 가지고 꾸준히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 효과적인 ‘엄마표 영어’를 위한 원칙은?


 

1. 엄마 의욕만 앞세우지 말자.  
2. 아이의 흥미와 특성을 잘 아는 것이 중요하다.
3. 아이가 영어학습을 할 준비가 되었는지 관찰하고 의논한다.
4. 다른 아이와 비교하거나 다른 사람의 방식을 따라하지 않는다.
5. 아이가 즐기고 있는가 이외의 다른 평가는 하지 않는다.
6. 교재와 교육 방법은 아이 중심으로 선택한다. 
7. 꼭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버리자.

 

자료: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영어사교육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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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아 한겨레신문 기자
열정적이고 긍정적으로 사는 것이 생활의 신조. 강철같은 몸과 마음으로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인생길을 춤추듯 즐겁게 걷고 싶다. 2001년 한겨레신문에 입사해 사회부·경제부·편집부 기자를 거쳐 라이프 부문 삶과행복팀에서 육아 관련 기사를 썼으며 현재는 한겨레 사회정책팀에서 교육부 출입을 하고 있다. 두 아이를 키우며 좌충우돌하고 있지만, 더 행복해졌고 더 많은 것을 배웠다. 저서로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자존감은 나의 힘>과 공저 <나는 일하는 엄마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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