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개의 눈으로 본 36가지 장면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지음
이지원 옮김/창비·1만6000원
그림책은 몇 살까지 읽어줘야 할까? 그림책과 관계된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이 질문을 하면 분명 표정이 밝지 않을 것이다. 그림책은 아이들만의 책이 아니다. 만화책이 아이들만의 책이 아니듯 그림책 역시 어른이든 아이든 읽을 수 있고 나이에 따라 그 속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이 다를 뿐이다. 요즘은 아이들이 즐기기엔 어려운 그림책도 적지 않다. 보통 부모들은 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만 그림책을 읽게 하고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글밥이 많은’ 동화책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떤 그림책은 초등학생이 읽어야 비로소 이해가 되고, 어른 독자를 위한 좋은 그림책도 적지 않다. 그런데도 이 그림책들은 ‘그림책은 아이들이나 읽는 것’이란 편견 때문에 그대로 묻히고 있다. 그 그림책들이 아까운 것이 아니라 그 좋은 책들을 아이들이 느끼고 경험할 기회가 없다는 점이 더 안타깝다.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의 책들이 그렇다. 그의 책들은 정말 그림책이다. 그의 책에서 그림은 이야기 전달의 보조적인 수단이나 삽화가 아니다. 그림이 아니면 이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글이 필요할까, 그 많은 글로도 그림이 주는 이 느낌을 과연 전달할 수 있을까 싶다. 내용은 철학적인 부분이 많아서, 가만히 있어도 자기 인생에 대해 의심과 불안이 드는 초등학교 고학년 무렵이 그의 책을 읽기에 적당한 나이다. 하지만 <눈>만은 어린아이들도 좋아하는 그림책이다. |
창비 제공 |
<눈>은 우리의 얼굴에 있는 눈에 대한 그림책이다. 눈이 있기에 우리는 아름다운 꽃을 보고 어느 길로 가야 할지 알 수 있다. 위험을 알아챌 수 있고 일상의 작은 기쁨을 누릴 수 있다. 흐미엘레프스카는 열여덟 개의 눈과 그 눈으로 볼 수 있는 서른여섯 가지 사람과 사물을 섬세한 필치로 그려내었다. 아이들은 눈 모양으로 뚫린 작은 구멍 너머에 무엇이 있을까 흥미를 느끼며 책장을 넘기게 되고 책장이 덮어지는 순간 자신의 눈이 소중한 선물임을 느낄 수 있다.아이들은 눈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없는 것은 상상하지 못한다. 하지만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는 사람이 있고, 눈이 없지만 사물을 느끼며 살아갈 수도 있다. 모든 것은 부재의 순간 그 의미를 비로소 알게 되는 법이다. 흐미엘레프스카는 이 짧은 그림책에 눈이 부재하는 순간을 보여주어 역설적으로 아이들이 자신의 눈을, 그리고 그 눈에 보이는 세상을 사랑하도록 만든다. 아이들에게 눈은 기본적으로 부모의 눈이다. 자기를 지켜보고 때로는 감시하는 눈이다. 아이는 이 그림책을 보며 자기에게도 눈이 있다는 것을 느낀다. 내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있구나 느끼고, 자기 눈에 보이는 세상에 한 번 더 마음을 준다. 그래서 자기를 더 사랑하게 된다. |
서천석 소아정신과의사 |
이 그림책을 덮고 아이와 함께 서로의 눈을 보자. 눈 속에 비친 나를 보고, 나를 보는 아이를 보자. 눈을 마주보는 것은 사랑을 만들어 낸다. 눈은 예로부터 영혼의 창이라고 했다. 영혼을 물끄러미 들여다본다는 것은 현대를 사는 우리에겐 어쩌면 지극히 사치스러운 행위이다.우리는 관계를 맺더라도 그저 상대가 필요한 것을 해주고, 내가 필요한 것을 얻으며 살아간다. 서로를 깊게 느끼고 그 영혼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그러나 진짜 필요한 것은 서로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 그렇게 서로를 받아들이는 것이다.서천석 소아정신과의사